한용걸 논설위원 |
그런데도 여전히 한쪽에서는 불신과 불안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불신은 북한을 향한 것이고, 불안은 정부를 향한 것이다. 북한을 상대했던 전문가들도 현 상황에 신뢰를 두지 못하겠다고 한다. 북핵 문제에 가장 깊숙이 접근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핵무기를 향한 북한의 열망은 마법처럼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했다. 북핵 폐기라는 공통 목표에 가려 수면 아래 잠복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들춰 보면 그 의심의 합리성을 깨닫게 된다.
첫째, 주한미군 문제다. 중국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타협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존 켈리 비서실장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리처드 닉슨과 지미 카터 대통령보다 더 과격하다. 이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협상에서 비핵화 스케줄에 맞춘 철수론을 거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제 서울 시내에서 언론인들이 미 정부 관계자와 가진 비공개 간담회 도중 가장 많이 꺼낸 질문이 주한미군 철수였다. 이 문제는 불거지는 순간 모든 이슈를 빨아먹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어제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하고 북·미회담 재고려까지 위협했다. 한·미 공군의 연합훈련과 백악관 보좌관의 발언을 문제삼았는데, 미 하원의 주한미군 2만2000명 유지에 대한 반발이 숨어있다. 앞으로도 시비 삼을 텐데 이 문제를 덮어두고 핵폐기 합의가 가능할까.
둘째, 북한에 대한 보상이다. 북한은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의 기술적 수준을 끌어올렸다. 김 위원장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자신감 때문이다. 협상에서 핵폐기 대가를 요구할 위치가 된 것이다. 대가를 어느 정도 계산해주느냐에 협상의 성패가 달려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북한에 제공하려고 했던 에너지 지원과 체제안정 보장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야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공론화되기를 거부당하고 있다.
셋째, 중국 변수이다. 중국은 2003년부터 6자회담을 중재하면서 북핵 이슈의 주인 역할을 했다. 지금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다. 중국이 북·미 간 협상에 대해 100% 동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할에 대해 긍정 평가했다. 그렇지만 계속 그럴지는 두고 봐야 한다. 중국은 극동지역에서 영향력이 축소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북핵 협상은 중국의 동북아 장악력을 흔드는 일이다. 갑자기 등장한 시 주석이 협상의 조력자가 될지, 훼방꾼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번 협상은 강대국의 수싸움이다. 우리는 그동안 외교적 노하우를 축적했고 전문성도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렸다.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드물게 맞는 기회이다. 국제안보는 공공재라고 한다. 이해당사자가 너무 많아 아무리 조심스럽게 접근해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조속한 성과 도출에 집착해 한반도 비핵화의 꿈풍선을 그려놓는 모호한 선언 수준에 그치도록 해서도 안 된다. 트럼프가 ‘최악의 거래’라고 비난했던 이란핵 합의를 뛰어넘는 결실을 거둬야 한다. 그 가이드가 문 대통령이다. 다음주 백악관을 나서는 대통령의 표정이 밝기를 바란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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