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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한국의 힘 - 시장경제·한미동맹·호국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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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14 23:49:43 수정 : 2018-05-14 23: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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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유민주주의 신뢰 부족 / 북한, 문 여는 것 자유의 출발점 / 공생·공영하는 한반도 위해선 / 국가의식과 정체성 제고해야 한국의 진정한 힘은 무엇일까. 며칠 전 인문학자들의 조찬모임에서 누군가 새삼스럽기도 한 이 질문을 던졌다. 아마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한반도가 미증유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고 있음이 분명하고, 이 시점에서 우리 힘의 소재 확인과 자기반성이 필요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한 나라의 힘은 크게 보면 문력(文力)과 무력(武力)의 합이다. 문력으로 보자면 한국의 힘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무력으로 보면 한·미동맹(한미상호방위조약)과 국군의 국방력이다.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무역거래량 세계 10위 안팎, 30·50클럽(인구 5000만 국민소득 3만달러)에 들 정도이니 이구동성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가 국민적 균형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무력에서도 한·미동맹이 한국의 힘인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국군의 자주국방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의견들이 있었다. 북한의 비대칭전력에서의 우위, 즉 핵과 미사일개발을 염두에 둔 견해였다. 또 국군의 국토방위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결국 한국의 진정한 힘은 ‘시장경제와 한·미동맹’으로 드러났고, ‘자유민주주의와 자주국방’에 대해서는 신뢰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이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한·미동맹을 약화하거나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정치과정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이상주의와 탁상공론, 그리고 혁명을 쉽게 남발하는 사회운동 분위기는 자제돼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근대국가의 출범에서 ‘자유’는 그 어떤 이념보다 앞서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자유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렇다면 자유는 누가 보장하는가. 물론 국민 개개인이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향유하는 주체가 돼야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국가가 지킬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국가 없는 자유도, 국가 없는 종교도 없다. 그렇기에 자유를 지키는 국가,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근대국가의 목표이기도 하다. 만약 개인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해 국가가 억압과 탄압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 전체주의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게 된다. 남의 자유와 남의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근대시민사회의 교양이고 미덕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완료해서인지, 더 이상 장마당이나 시장경제를 외면하면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때문인지, 경제개발을 위해 철통같이 닫혔던 문을 열고 있다. 북한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문을 여는 것은 자유의 출발점이다. 시장의 자유는 나중에 종교의 자유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남북이 문을 열고 서로 왕래하고 소통해야 통일도 되고, 번영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경제개발을 위해 문을 여는 것을 보면 우리의 1960, 70년대가 생각난다. 정확하게 남북한 경제는 75년을 기점으로 경제력이 역전됐다. 남한보다 잘살던 북한은 뒷걸음질했고, 남한은 승승장구하면서 오늘날 세계 11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남북한과 같은 작은 땅덩어리의 나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러시아나 중국처럼 사회주의를 하면 반드시 못살게 돼 있다. 도시국가처럼 활발한 무역을 하고 문화교류를 하면서 지적·경제적 집약을 통해 국가문화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그 대표적인 성공국가이다. 한국의 박정희와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는 한때 서로 배우고 칭찬하면서 아시아경제를 이끈 주역(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었다.

뒤늦은 북한의 경제개발 신호를 보면서 한민족으로서 응원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왕조전체주의로 뒷걸음질 친 북한체제가 시장경제·자본주의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염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중국식의 공산·자본주의를 달성하는 것도 중간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해 냈듯이 북한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의 자기발전을 위한 성찰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자유는 자신(국민)의 능력만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개발은 한국경제에도 새로운 활로와 도약을 열어주고, 한반도가 상생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통일과 평화를 약속받는 행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생·공영하는 한반도가 된다면 이보다 더한 한민족의 축복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시기에 대한민국에 주문하고 싶은 것은 역설적으로 국가의식의 제고이다.

잘사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식과 정체성의 부족이다. 세계화를 지향한 대한민국의 지식인과 기업인, 그리고 정치인은 자신도 모르게 국가의 존재를 망각하거나 때로는 무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국가의식과 국가전략의 부재만큼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없다.

북한에 억류 중이었던 한국계 미국인의 석방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과 환대를 보면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은 청교도 정신이라고 하지만 어느덧 국가종교가 된 미국 그 자체를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 역사에서 ‘호국불교’라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아직 ‘호국기독교’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내건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서 어떤 소식이 전해오든 기독교는 호국기독교가 돼야 시대적 사명과 함께 한국의 힘이 될 것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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