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산업 입국을 통한 근대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군사정권은 먹고사는 민생고를 해결하는 산업화의 의의를 신성시하면서 국민의 다양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 반체제 활동으로 간주돼 탄압의 대상이 됐다. 특히 국가보안법이 이름과 달리 군사정권의 유지를 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면서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엄격한 제한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위는 구속의 위험을 무릅쓰고 벌이는 정치투쟁이었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
모든 시위는 섬에서 광장을 지향한다. 불의가 있고 그로 인해 고통이 있으면 이를 알려서 시민의 관심을 환기시켜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위는 소수만이 알고 있는 문제를 다수와 공유하는 활동이다. 소수의 섬에 고립돼 있던 사람이 시위의 다리를 건너서 다수의 시민을 만나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광장을 확보하게 된다. 시위가 광장에서 벌어지게 되면 시위에서 던지는 메시지와 요구사항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 사실이 돼 공론의 장으로 옮아가게 된다. 시민사회가 건강하고 단단하면 공론의 장에 들어선 시위의 주장은 토론을 통해 해결의 과정을 밟게 된다. 처음 시위에 나서지 않았던 시민도 공론의 장에 들어서서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생각의 흥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시위가 그렇지 않지만 몇몇 시위는 현장에서 만나는 동참을 강요하고 반대와 이견을 인정하지 않으며 시민과 충돌을 일으키는 폭력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시위는 현장에서부터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고 주위로부터 고립되면서 광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즉 내부의 결속은 강하고 단단해질지 몰라도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창을 스스로 닫고 있다. 그 결과 시위가 광장에 나왔지만 스스로 섬에 갇히는 역설적 현상을 낳고 있다.
시위는 광장에 나올 수밖에 없는 절박성을 지니고 있다. 근대의 법치국가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위를 인간 권리로 보장하고 있다. 시위가 있으면 주위의 시민이 불편을 겪고 상인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절박한 목소리를 내느라 시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편을 불편으로 따지지 않고 손해를 손해로 여기지 않는다. 시위가 법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와 시민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과격한 폭력으로 진행돼 시민의 동의와 공감을 받지 못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시위는 절박한 목소리를 내느라 치를 수밖에 없는 고통이 아니라 같은 소리를 끝없이 되풀이하며 타인에게 감내할 의미가 없는 고통이 된다. 그 결과 시위는 공론의 장으로 이행하지 못하고 불편과 피해의 사실이 더 주목을 끌게 된다. 시위가 섬에서 광장으로 나와 공론의 장을 형성하면서 인권으로 보장이 돼야 하겠지만 광장에 나와 섬으로 돌아간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지 그 정당성을 뚜렷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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