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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좌익은 미군 철수 시위 / 진보세력 ‘평화’ 외치며 반미 / 남베트남은 철군 후에 나라 망해 / 시간 흐르면 진실의 실체 드러나 세상일이란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 나라의 운명과 직결된 북한 비핵화 논의가 특히 그렇다. 판문점선언 이후 북핵 폐기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제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주한미군 철수 논란으로 번졌다. 한국과 미국이 손사래를 치면서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불길하다. 6·25전쟁의 상흔을 남긴 역사의 기억이 선명한 까닭이다.

#(장면1) 1949년 6월27일 마지막으로 남은 주한미군 1500명이 인천항을 떠났다. 사흘 뒤 미 육군은 ‘주한미군 철수 완료’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소련은 “북에 주둔한 소련군 6만명을 철수시킬 테니 남쪽의 미군 2만명도 빼라”고 미국을 압박했다. 때맞춰 좌익 세력은 주한미군 철수 시위를 벌였다. 국회에서도 의원 47명 명의로 ‘외군 철퇴 긴급 동의안’이 제출됐다. ‘자주 국가’와 ‘민족 자율’이 명분이었다. 밤낮으로 계속되는 좌우 대립과 반미 시위에 미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군비 감축이 절실했던 미국은 일본으로 방위선을 물리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결국 철군 1년 후 수백만 명이 죽는 전쟁이 터졌다.

배연국 논설실장
#(장면2) 1973년 3월29일 남베트남에 있던 미군 90여명이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두 달여 전 남북 베트남, 미국 사이에 종전을 선언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됐기 때문이다. 협상을 이끈 키신저와 북베트남 대표 레둑토는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 협정이 국제 사기극으로 판명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년 후 북베트남은 전쟁을 개시해 남쪽을 집어삼켰다. 수도 사이공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주변 바다에는 자유세계로 탈출하는 보트피플로 넘쳤다. 패망 전 남베트남에는 미군 철수와 평화를 외치는 좌익들이 활개 쳤다. 유력 야당 지도자는 대선 유세에서 “우리 조상들이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끼리 피 흘리는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얼마나 슬퍼하겠는가”라고 소리쳤다.

#(장면3) 2018년 3월31일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진보단체들이 미군 주둔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한 연사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자”고 외쳤다. 가극단 미래는 ‘주한미군 철수! 지금이 최적기’라는 격문을 통해 “우리 민중을 무참히 죽이고 무단 침입한 점령군”이라고 성토했다. 그 광경을 경찰은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고, 미국의 TV방송들은 낱낱이 카메라에 담았다. 미국을 뺀 ‘우리끼리’ 평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집권층 내부에서도 점차 커지는 형국이다. 우리를 보는 미국의 시선 역시 예전 같지 않다. 한국 내 반미 기류를 지켜보면서 실리를 챙기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껌 값’이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했다.

작금의 사태가 6·25의 전철을 밟을지, 베트남처럼 적화의 재앙을 부를지, 아니면 우리가 소망하는 평화를 선사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물론 미국이 우리의 안보를 끝까지 지켜줄 수 없고, 미국에 안보를 내맡겨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의지가 해체된 상태에서 미군마저 철수한다면? 벌써 예감이 좋지 않다. 불행했던 과거의 일들이 요즘 데자뷔처럼 재연되는 까닭이다. 한·미 대통령이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는 45년 전 베트남의 판박이다.

불교 벽암록에 이런 일화가 등장한다. 옛날 중국의 운문선사는 어떤 스님이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가을바람에 실체가 드러나지.” 찬바람에 낙엽이 모두 떨어지면 나무의 몸체가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아직은 평화로 채색한 초록 잎들이 무성한 5월이다. 찬바람에 잎들이 떨어지는 가을은 저만치 멀다. 진실의 몸통이 드러나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 그 실체를 미리 알기는 어려우나 방법이 없진 않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오늘을 알 듯이 현재의 일로 미래의 예측이 가능하다.

각자 국가의 운명 앞에 질문을 던지자.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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