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일각에 주한미군을 흔들지 못해 안달하는 세력이 있다. 문 특보 진의는 따져볼 여지라도 있지만 이쪽은 따져볼 여지도 없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3일 ‘미국 전쟁반대노조협의회’와 함께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서 튀어나온 것이 ‘전 세계에 주둔하는 미군 철수’ 요구다. 해군은 얼마 전 제주에서 ‘2018 대한민국 국제 관함식’을 추진하면서 찬반 여부를 물었다. 강정마을의 일부 주민은 반대했다. 미 군함이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지난달 성주 사드 기지 앞길을 가로막은 시위대 역시 ‘미군은 떠나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지난해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 등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승현 논설고문 |
평화와 전쟁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악습이다. 이춘근 박사(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전략’을 일독할 필요가 있다. 이 박사에 따르면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는 문장은 틀린 문장이다. 평화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어서다. 목적과 수단을 같은 차원에 놓고 선택을 강요하니 황당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둘을 한 문장에 넣고 싶다면 로마 전략가인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의 명언을 되새기는 편이 낫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언 말이다.
그러잖아도 안보 현주소는 어수선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 준비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한·미 양국 정부가 진화했지만 뭔가 개운치 못하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27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동맹국들과 논의하고, 물론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논의할 이슈의 일부”라고 했다. 백악관 서열 2위인 존 켈리 비서실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언쟁을 벌여 철수 논의를 막았다는 미 방송 보도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했다. 주한미군이 안팎으로 흔들리는 모양새다.
문재인정부는 국민 생명을 지킬 책무가 있다. 막중한 책무다. 한·미 양국 정부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면서 버팀목을 챙겨야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를 트럼프를 설득하고 달래야 한다. 그럼에도 위험한 곡예를 일삼는 이들이 허다하다. 잘하는 짓인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라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먼저 직시할 것이 있다. 화급한 과제는 북핵 폐기라는 점이다. 그것이 가능한지 가늠하려면 갈 길이 멀다. 판문점 선언은 고무적이지만 북한은 여전히 양치기에 가깝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그 양치기 말이다. 문 특보 스스로 기고문에 쓰지 않았나. “과거에 북한은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않으면서 보상을 받아냈다”고. 북한이 변했다고 믿을 근거가 대체 어디에 있나. 그런데 왜 지금 주한미군을 흔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공자는 ‘언필신’이라고 했다. 말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과연 그런가. 국민 생명이 걸린 안보자산을 흔들기에 앞서 북한에 언필신 덕목이 있는지부터 거듭 확인할 일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