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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평화’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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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02 21:13:17 수정 : 2018-05-02 23: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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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야스의 평화 공세에 속은 / 日 도요토미 가문 패전 후 멸족 / 조만식·김삼룡 맞교환 제안 등 / 北, 6·25 직전 유화 제스처 난무 “첫째도 대비, 둘째도 대비다. 대비가 있으면 상대는 총부리를 겨누어오지 않는다.”

중세 일본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이다. 그는 무예만큼이나 지략과 권모술수에도 능했다. 대하소설 ‘대망’에 소개된 일화를 보자. 이에야스는 마지막으로 자웅을 겨루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가 수성하던 오사카성에 특사를 보냈다. 싸움을 그만하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제안한다. 오랜 전쟁에 이골이 난 히데요리는 이에야스의 화친안을 덥석 받았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이에야스는 “우리가 서로 믿기로 했으니, 해자(垓子)를 메워 백성들에게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가 도래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자”고 제의한다. 오사카성은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로 깊은 이중 해자를 갖고 있었다. 히데요리 병력은 물론 이에야스 병력까지 동원돼 밤을 새우며 해자를 메웠다. 볼 만한 평화 이벤트였다. 하지만 해자가 다 메워지자 이에야스 부대는 난공불락이라던 오사카성을 순식간에 함락시켰다.

이에야스 꾐에 속은 히데요리는 어머니와 함께 자결했다. 그의 자손도 모조리 처단돼 도요토미 가문은 멸문됐다. 화친 조약을 어겼다는 비난에 이에야스는 훗날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 적의 말을 믿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 적장의 말을 믿는 바보는 죽어 마땅하다.” 역사는 이에야스를 일컬어 군웅이 할거하던 일본 열도를 처음으로 천하통일한 최후의 승자로 기록하고 있다.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하고, ‘평화’를 이야기한다. 일견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전면전 불사를 거론하던 대적 관계가 하루아침에 풀릴 수는 없다. 분란의 원인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는 그대로 있다. 아니, 지금도 지하 무기공장에서 성능 개량과 추가 생산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중단한다는 핵실험은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휴전선 이북 강원도 산간에 제2의 핵실험장을 짓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

남북 사이에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을 꼼꼼히 분석해보면 1950년 6·25전쟁 직전 상황과 몸이 오싹할 정도로 흡사해 기시감이 들 정도다. 핵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는데 대전차 방호시설 철거와 대북 확성기 철폐, 국방개혁2.0이란 미명하의 장군 80여명 감축 등을 속전속결로 추진하고 있다. 장병 복무기간도 비현실적으로 단축하려다 좌초된 적이 있다. 스스로 히데요리의 길을 가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일성은 1949년 3월 소련을 방문해 스탈린을 만났다. 흐루쇼프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공격(남침)을 위한 완벽한 계획서를 가지고 왔다. 그날 만찬에서 우리는 이미 결정된 것(공격)을 주로 화제로 삼아 얘기했다.” 1950년 1월 김일성은 다시 한 번 모스크바를 방문해 군원 요청과 남침 승인에 대한 확답을 받는다.

당시 북한의 행태를 보자. 1950년 6월 10일 북한은 느닷없이 자신들이 억류하던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 부자와 그해 남한에서 체포된 거물간첩 김삼룡·이주하를 맞교환하자는 평화공세를 폈다. 이날은 강릉 8사단 이형근 준장이 전쟁 발발 가능성을 상부에 보고한 날이었다. 우리는 맞교환을 긍정 검토했으나 북한은 열흘간 시간을 끌다 무산시켰다. 6월20일 상공장관을 지낸 임영신 의원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쟁 가능성을 보고했지만, 신성모 국방장관과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전쟁을 대비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묵살한다.

국방부는 오히려 23일 낮 경계령을 해제하고 장병들의 주말 휴가와 외출을 허락한다. 전방 부대 장병 절반 이상이 텅 비었다. 채 총장은 24일 오후 6시 육군회관 개관식에 육본 참모진과 각 사단장, 주한미군사고문단 등 고급장교 50여명을 초청해 밤새 술 파티를 벌였다. 결국 개전 나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고, 국군 9만8000명 중 4만4000명이 전사했다. 군장비도 80%가 소실됐다. 앞서 신 장관은 이범석 전임 국방장관이 미군 철수를 대비해 애써 창설한 4만명의 예비군 조직 호국군을 해체했다. 이러고도 망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신기할 뿐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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