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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조직을 좀먹는 채용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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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7 00:27:53 수정 : 2018-04-27 00: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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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쯤 A지방자치단체 산하 공연장의 음악회를 찾았다. 보통 음악회장 주변은 잔칫날 같다. 환한 미소와 인사말이 연신 오간다. 하지만 이날 프로그램북을 건네는 주최 측 직원의 분위기는 엄동설한처럼 싸했다. 이상하다 싶던 차에, 다른 직원 B씨의 말을 듣고 의문이 풀렸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내부 분위기가 엉망”이라고 했다.

B씨는 ‘의원이니 시 관계자니 여기저기서 꽂은 낙하산’ 때문에 갈등이 말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의욕적으로 문화기획을 해보려 해도 ‘독박 업무’가 되기 십상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누구는 종종거리며 일하고, 누구는 소 닭 보듯 자리만 지키는’ 분위기가 더 그를 힘 빠지게 하는 듯해 보였다.
송은아 문화체육부 차장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A지역 문화재단은 출범 초기부터 잡음이 일었다. 시장 선거참모 출신이나 프리랜서 경력밖에 없는 이가 자격요건에 미달해도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곤 했다. 이후로도 파벌·예산 낭비·인사 비리 등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래서일까. 세계적 성악가를 데려오고, 꽤 완성도 있는 오페라를 올렸던 A지역은 어느 해부턴가 주목할 만한 소식이 뜸해졌다.

최근 금융권·공기업 채용 비리를 보며 A지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차피 인맥도 실력이야’라고들 한다. 순진했던 사회초년생들이 인맥·배경에 따른 특혜를 목격하며 박탈감을 느낀 끝에 내뱉는 표현이다. 현실이 바뀔 것 같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자조하며 쓰린 속을 달랜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와 거리가 멀었다. 특히 힘이 약한 지자체 산하기관일수록 반칙이 횡행하기 쉬운 듯하다.

지역 문화계 관계자 C씨는 “작은 단위 자치단체로 내려갈수록 시장·군수나 의원이 되려면 지역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보은 인사로 기관장을 임명하면, 임원급 본부장도 ‘내 사람’을 데려오게 되고 이 악순환이 더 아래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 시에서는 시장의 초·중등 동창이 시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탁자에 다리를 올리고 ‘나 누군데’ 하며 거드름 피우는 일이 벌어졌다더라”며 이권 개입이 탄생하는 문화를 지적했다.

지자체 산하기관들은 의회의 부당한 입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문화기획자 D씨는 “산하기관은 예산을 좌우하는 지역의회에 절절맬 수밖에 없다”며 “상대에게 밉보이지 않으려면 편법이어도 민원을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광역단체의 경우 이제 많이 달라졌지만, 입사 초기인 15년 전만 해도 ‘대표의 제자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조카다’ 하는 사람이 실제 존재했다”고 덧붙였다.

채용 비리는 조직을 좀먹는다. 사회 전체에 반칙과 특혜가 횡행하면 일할 의욕이 꺾이고, 작은 비리를 봐도 관행, 필요악이라며 냉소하는 분위기가 스며든다. A지역 사례를 들었을 때도 반쯤 놀랐지만, 반쯤은 ‘우리나라가 역시 그렇구나’ 싶기도 했다. 촛불이 몰아내려 한 ‘적폐’에는 이런 풍조도 포함된다.

근 몇년 사이 일부 광역자치단체가 산하기관 공동 공개채용 등 채용 절차를 강화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비리 없는 사회는 불가능한 이상향일지 몰라도, 제도를 촘촘히 보완해 반칙을 몰아내려는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송은아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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