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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한국 과학기술의 주역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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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5 23:27:53 수정 : 2018-04-25 23: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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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산 라디오는 ‘A-501’ / 그 중심엔 ‘김해수’란 엔지니어 / 韓 전자산업 태동에 큰 역할 / 과학기술자 조사·발굴 추진을 올해 초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기사가 보도됐다. 2017년 말 기준 전자산업의 생산규모는 중국, 미국, 한국 순이고, 시장규모는 중국, 미국, 일본, 독일, 한국 순이라는 기사였다. 중국이 세계 1위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3위 혹은 5위라는 점도 놀랍다. 1960년대만 해도 불모지에 다름 아니었던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이 세계의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은 언제 시작됐을까.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은 1959년에 이루어졌던 라디오 국산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국산 라디오는 금성사(현 LG전자)가 개발한 ‘A-501’이었다. A는 교류(Alternating Current·AC)의 첫 글자에서 따왔고, 5는 5구식 진공관 라디오라는 의미였으며, 01은 제품 1호를 뜻했다. A-501의 가격은 2만환으로 금성사 대졸 사원의 석 달치 월급에 해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라디오 국산화의 주역은 누구일까. 사실상 우리나라 기술발전에 기여한 엔지니어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기술발전은 집단적 학습에 이루어진 경우가 태반인 데다 엔지니어 대신 경영자가 부각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한 엔지니어들이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발간함으로써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라디오 국산화의 주역인 김해수가 이런 예에 속하는데, 그의 자전적 회고는 ‘아버지의 라디오’라는 책으로 발간된 바 있다. 김해수는 하동에서 자랐고, 일본 동경고공에서 전기공학을 배웠다. 해방 이후 몇몇 라디오 가게를 운영하다 1958년 금성사에 응시해 라디오 개발팀에 합류했다.

금성사가 국산 라디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참고 모델로 삼은 것은 산요 라디오였다. 금성사의 기술진은 산요 라디오를 분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을 익혔고, 필요한 경우 일본의 기술자들에게 접촉해 정보와 지식을 얻어냈다. 이처럼 후발자가 선발자의 완성품을 출발점으로 삼아 기술을 학습하고 개발하는 방법은 ‘역행 엔지니어링’으로 불린다.국산 라디오를 개발한 후 이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길은 더욱 험난했다. 연관 산업의 기술수준이 워낙 취약한 탓에 부품의 불량이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더구나 일본과 미국에서 유입된 밀수품이 범람하고 있어 국산 라디오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금성사의 라디오 공장에는 재고가 수북하게 쌓여 갔다. 당시의 재고창고 안에는 반품으로 처리된 라디오가 무려 2000대나 방치돼 있었다 한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이러한 난관 타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 전 대통령은 예고도 없이 금성사의 라디오 공장을 방문했고, 김해수는 밀수품의 유통을 막아야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밀수품 근절에 관한 최고회의 포고령’을 선포했으며, 공보부 주관으로 전국의 농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이 전개됐다. 그때부터 국산 라디오는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고, 금성사는 라디오에 이어 선풍기, TV, 전화교환기 등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이 태동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해수라는 엔지니어가 있었다. 다른 산업의 경우에도 상당한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며, 김해수 같은 인물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한국의 과학기술자에 대해 축적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을 구축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를 발굴하고 있는 정도이다.

매년 4월은 ‘과학의 달’로 과학기술에 대한 풍성한 행사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한 행사 중에 서양의 과학기술자는 종종 등장하지만 한국의 과학기술자를 접할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과학기술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헤아려 보면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한국의 과학기술자를 조사하고 알리는 일이 적극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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