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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무기도 병력도 없는 진짜 DMZ 만들기…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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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1 10:00:00 수정 : 2018-04-21 1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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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인근에 세워져 있는 군사분계선 표식. 게티이미지
주먹조차 들어가지 않는 촘촘한 철망, 그 위에 놓인 가시 돋친 윤형 철조망. 철망이 설치된 곳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풀 한 포기 없이 방치된 누런 땅, 지뢰가 매설된 곳을 표시하는 붉은색 역삼각형 모양의 경고 팻말….

우리가 비무장지대(DMZ)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들이다. 밝고 긍정적인 것보다는 두렵고 무서운 느낌이 더 많은, 다가가기 힘든 공간이다.

이같은 느낌이 180도 달라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부가 4.27 남북 정상회담 때 6.25 전쟁 종전선언을 추진하면서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남북 양측의 병력과 중화기를 철수하는 등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를 협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5년 8월 9일 군 관계자들과 언론사 관계자들이 북한 지뢰도발이 발생한 비무장지대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비무장지대는 비무장지대가 아니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은 군사분계선에서 2㎞씩 후퇴해 비무장지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무늬만 비무장지대일 뿐, 실제로는 남북 군사력이 밀집한 중(重)무장지대였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후인 1960년대부터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초소들을 공격했다. 이에 6군단장 한신 중장은 1964년 남방한계선 일반전초(GOP)에 목책(木柵)을 만들어 북한 침투 저지에 나섰다. 이것이 우리가 방송에서 보는 휴전선 철책의 시초다. 1967년 휴전선 전 지역에 철책을 세우기로 하고 주한미군의 지원을 받아 철조망을 쳤다. 1970년대 들어서는 2중, 3중 철책이 구축됐으며 비무장지대 내 GP를 연결하는 추진철책도 만들어졌다.

비무장지대를 상징하는 GP에 대한 언급은 2016년 4월 비밀해제된 1972년 4월 외교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2년 3월 작성된 ‘북괴(북한)의 비무장지대 요새화’라는 2급 비밀문서에서 정부는 “북괴는 1969년부터 비무장지대에 있는 중앙분계선 가까이에 225개의 공고한 진지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무장지대를 요새화해 남침준비를 완료했으며, 전선을 2㎞ 정도 남진시킨 결과를 가져왔다”며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북한 병력과 화기 배치를 설명했다.

2월 21일 오후 판문점 인근의 한 북한군 초소에 인공기와 인민군 육군 깃발이 나란히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판문점=연합뉴스
같은달 17일 작성된 3급비밀 문서에 따르면, 윤석헌 당시 외무부 차관은 프랜시스 언더힐 당시 주한미국대사대리와 면담했다. 언더힐 대사대리는 “유엔군측에서도 비무장지대에 100여개의 GP를 가지고 있으며, GP를 먼저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이쪽(유엔군)”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윤 차관은 “우리가 비무장지대에 GP를 가지고 있다 하나 그것은 북괴의 비무장지대 무장에 대응한 자위적 조치”라며 “북괴가 (진지를) 철거하면 (유엔군 진지도) 동시에 철거하면 된다”고 답했다.

병력과 장비 배치와 함께 비무장지대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군사분계선 가까이로 이동시켰다. 우리 군도 이에 맞서 남방한계선 철책을 북상시켰다. 상대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쉬운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동부전선 일부 지역에서는 양측 간의 거리가 1㎞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았지만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 행위다.

이 과정에서 비무장지대는 크게 훼손됐다. 2013년 녹색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992㎢였던 비무장지대 면적은 570㎢로 40% 넘게 감소했다. 

비무장지대가 훼손되면서 남북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비무장지대 고유 역할은 유명무실해졌다. 특히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비무장지대는 1960년대와 유사한 무력충돌 위험이 감돌았다. 서북도서에서는 북한이 우리측에 먼저 사격을 가했지만 비무장지대에서는 우리 군이 북한에 먼저 사격하는 기조가 이어졌다.

한반도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주한미군은 한국군의 대응이 지나치게 경직됐으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5년 6월 주한미군이 발간한 ‘2014 전략 다이제스트’는 “2014년 한국군이 비무장지대와 북방한계선에 접근하는 북한군을 향해 11차례 대응사격을 가했다”며 “치명적 부대를 운용하기 전에 적의 의도와 조치를 정확히 평가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 국방부가 국회에도 보고하지 않았던 사안이었다. 한국 국방부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사실을 주한미군이 언급한 것은 ‘무조건 방아쇠를 당기지 말고 북한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라’는 경고와 더불어 ‘비무장지대 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우려의 메시지였으나 우리 군 당국은 무시해버렸다.

이러한 와중에 지속된 한반도 긴장 상태는 2015년 8월 북한 비무장지대 지뢰 및 포격도발로 폭발했다. 북한은 동원령을 내렸고, 우리 군은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경고와 함께 맞대응에 나서 한반도는 전쟁 일보 직전의 위기에 직면했다. 남북은 같은달 25일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를 이끌어내 위기 국면을 넘겼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정세는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양측의 왕래와 연락이 없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중동부전선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통문 옆에 위치한 초소에서 국군 장병이 경계를 서고 있다.
◆비무장지대 긴장 완화도 CVID 필요

올해 들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에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의미를 비무장지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7일 브리핑에서 “비무장지대의 실질적인 비무장화도 관심사인데, 실무회담에서 결론 내기 어렵다”며 정상회담 논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비무장지대를 비무장화하는 것은 한반도 긴장 완화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군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60여년 동안 훼손됐던 비무장지대 원상회복이 정상회담에서 100% 달성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1972년 7.4 공동성명 이후 비무장지대 원상회복을 포함한 남북 군사적 신뢰 구축 합의는 43건에 달하지만 이행된 것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한 경의선, 동해선 군사보장 뿐이다.

남북 군 당국은 2000년 9월 1차 국방장관 회담에서 도로, 철도 공사 군사보장 조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도로는 경의선이 2003년 10월, 동해선이 2004년 10월 공사가 완료돼 2004년 12월부터 운행에 들어갔다. 경의선 도로는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단절됐고, 동해선 도로도 2015년 10월 이산가족 상봉을 마지막으로 사용이 중단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과 대표단, 예술단 등의 방남에 쓰이면서 실낱 같은 연결이 다시 이어졌다.


아무리 좋은 합의안이 나와도 남북이 정치적 환경 변화에 의해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휴지조각보다 못하다. 남북이 도출했던 합의안 대부분이 그런 처지였다. 반면 비무장지대를 뚫고 남북을 연결한 경의선, 동해선 도로와 철도는 남북 왕래가 끊어진 기간도 있었지만 도로와 철도 자체는 남아 남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한번 합의해서 이행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의제였던 것이다.

개성공단으로 연결되는 경기 파주 통일대교. 파주=연합뉴스
정부가 주목하는 것도 이런 성격이다. 북한 비핵화 원칙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CVID)처럼 완전하고 깨끗하며 되돌릴 수 없는 의제를 찾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비무장지대 GP와 중화기 철수는 이같은 성격과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상호 검증이 가능한데다 휴전선 일대에서 양측의 감시망이 서로를 지켜보고 있어 한번 철수시킨 중화기를 재반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을 명시한 기존 남북 합의도 이미 존재하므로 정상회담에서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고 후속 군사회담에서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논의하면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는 어렵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60여년 동안 지속된 현재 상황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남북이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까지 확보한 군사적 요충지에서 물러나는 것은 비무장지대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양측 모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비무장지대를 단번에 비무장화하는 것보다는 남북 합의하에 단계적으로 비무장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20일 기자들과 만나 비무장지대 내 중화기와 GP 공동철수에 대해 “바로 철수하는 것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 번에 이뤄지기 어렵지만 우리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2㎞에서 철수한 경험이 있다”며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단계적으로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해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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