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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아동학대 어린이집에 딸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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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0 23:23:46 수정 : 2018-04-20 23: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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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복귀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나는 퇴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자신과 ‘세트’인 줄 알았던 엄마가 아침마다 사라지자 아이는 하루 종일 먹는 것 없이 설사만 해댔다. 증상은 한 달 가까이 계속됐고, ‘하루이틀이면 괜찮아질 것’이라던 의사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두 달 전부터 함께 하던 베이비시터마저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으니 엄마가 보는 게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시터 대신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게 됐다. 외할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아이는 다행히 몸을 회복해갔다. 진통제를 드시며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면 많은 워킹맘들이 그러하듯 괜한 죄책감과 자격지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민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쯤, 기적 같은 전화 한 통을 받게 됐다. 복직 수개월 전부터 대기를 걸어놨던 어린이집 한 곳에서 입소 의사를 물어온 것이다. 무려 구립 어린이집이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당장 입소하겠다’고 대답했다.
권이선 사회2부 기자

하지만 느닷없는 연락이 이상해 알아보니 해당 어린이집은 한 달 전 ‘아동 학대’로 언론의 관심을 받은 곳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폐쇄회로(CC)TV 속에서 교사는 간식을 먹일 때 아이 목이 꺾일 정도로 음식물을 밀어 넣거나 한쪽 발목만 잡아당겨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등 다수의 아이들에게 가학 행위를 했다.

보도 이후 경찰 조사가 이뤄졌으나 해당 어린이집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부모들의 신뢰를 잃은 어린이집은 정상 운영이 어려워 새 학기를 제때 시작할 수도 없었다. ‘바늘구멍’ 수준이었던 입학문이 정원미달이 될 정도로 뻥 뚫려 대기 20번대였던 나에게까지 연락이 왔던 것이다. ‘범죄’는 아니더라도 거칠게 다뤄지는 아들딸의 모습을 확인하며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린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난 결국 아이를 입소시키기로 결정했다. 마냥 친정엄마에게만 아이를 맡길 상황이 아닌 데다 다른 어린이집은 몇 달째 대기번호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뒤로 밀려나고 있어 이번에 입소하지 않으면 언제 순번이 돌아올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문제 교사는 사직했고, 사건 발생 직후엔 관리가 더 철저하지 않을까’라고 애써 정당화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2022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률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공약에 발맞춰 각 지자체들은 어린이집 확충 실적을 홍보하는 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부모들이 변화를 체감하기는 아직 역부족이다. 어린이집의 대기순번이 100∼200번을 넘는 사례도 여전히 허다하다.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 대기자 수는 28만2000여명으로 재원 아동(17만9000여명)의 약 1.57배에 달한다. 100명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대기 인원이 157명이라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대 행위가 한 번이라도 발생한 어린이집은 즉각 폐쇄 조치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아이를 맡길 곳 없는 부모들의 반대로 계속 운영되는 어린이집들이 많다고 한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뒤돌아섰을 ‘워킹대디’ ‘워킹맘’의 마음이 오죽했을지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권이선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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