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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엄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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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19 21:34:44 수정 : 2018-04-19 21: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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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에 돌아본 우리 사회
공공시설 문턱·계단부터 없애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버려야
주위 사람 배려가 선진국의 척도
몇년 전 서울 강서구에서 살 때의 일이다. 출근하기 위해 아파트단지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때가 장애인 특수학교 버스가 오는 시간과 겹쳤다.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지적장애아 2명이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두 어머니는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장애가 심한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고, 버스가 떠날 때는 창가에 매달린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곳에서 3년간 살면서 이들과 수없이 마주쳤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니면 어머니들이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화장한 얼굴을 본 기억도 없다. 스스로를 돌볼 시간도, 그럴 마음도 없었으리라.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한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여고 동창 친구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다. 어머니 친구 한 분이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을 동반했는데 그가 힘없는 여자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괴롭혀 문제가 됐다. 10여년 전 가족모임에 한 공직자 부부가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여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지적장애아의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려고 데리고 왔다”면서 울더라는 얘기를 들은 것도 공통점이다. 누구도 함께 놀아주지 않으니 그런 사달을 일으켰을 것이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에 의지했던 영문학자 장영희는 산문집 ‘내 생애 단 한번’에 초등학생 때 쓴 일기를 옮겨 적었다. ‘엄마의 눈물’이라는 제목이 달렸다고 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등굣길에 연탄재를 깔아놓았고 내리막길에선 그를 업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엄마의 이마에 흐르는 그 땀이 눈물같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를 업고 오면서 너무 힘들어서 우셨을까, 아니면 또 ‘나 죽으면 넌 어떡하니’ 생각하시면서 우셨을까.”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언제나 조신하고 말 없는 어머니였지만, 기동력 없는 딸이 이 세상에 발붙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목숨 바쳐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 억척스러운 전사였다. … 나 잘할 수 있다고, 제발 한 자리 끼여달라고 애원해도 자꾸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세상에 그래도 악착같이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오늘이 제38회 장애인의 날이다. 그동안 장애인 인권·복지 문제가 수없이 제기됐지만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장애인들이 상처받을 만한 일은 주변에 널려 있다. 법에 규정된 권리구제 수단인 시정명령 사례는 단 두 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니 그 어머니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주민 설명회 때마다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의 고성으로 난장판이 된다. 장애 학생 학부모들이 무릎 꿇고 간청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 동네엔 장애인학교를 세울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지난달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지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그때뿐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주말 곳곳에서 장애인 관련 행사가 열렸다. 대학교에 다니는 딸이 강남의 한 복지시설이 연 장애인 행사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는데, 자원봉사자 수가 예정했던 인원의 절반에 그쳤다고 한다. 무관심하다는 것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미국 특파원 시절에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장애아가 다른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냈다. 주택가 도로에는 ‘이곳에 시각장애인이 사니 자동차 운전에 주의하라’는 팻말까지 세워져 있다. 그때부터 나는 장애인들을 구분하지 않고 이들을 배려하는 게 선진국의 척도라고 믿는다. 우리나라가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달러를 달성할 것이라고 하지만, 선진국 진입 척도가 얼마나 버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을 위해 공공시설의 문턱이나 계단부터 없애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주위 사람들을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는 세상.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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