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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굽이굽이 고된 삶의 흔적… 가슴 먹먹한 봄날

입력 : 2018-04-20 10:00:00 수정 : 2018-04-18 17: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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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굽혀야 보이는 죽림굴/살기 위해 숯을 구웠던 아비/박해 피해 숨어 기도한 교인/한때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세월 흘러 새순에 묻힌 역사/쏟아지는 햇살… 눈물이 왈칵
#1.‘아비’와 ‘어미’는 산을 탔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산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보릿고개였다.
단속을 피해 인적 드문 깊숙한 산골짜기에 돌로 가마를 쌓아, 숯을 구웠다.
‘숯검정’을 뒤집어 써 검덕귀신이 따로 없었다.
허가받지 않은 숯가마니, 단속이라도 뜨면 가마를 그대로 둔 채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래도 숯을 구워 장에 내다 팔 수 있으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다.

#2.밖에서 보면 아랫부분이 파인 큰 바위 정도로 여겨진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시대 영남 지역 천주교인들의 피난처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100여명의 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토기와 목기, 옹기 등을 만들어 목숨을 이어갔다.
로마제국 시절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예배를 드린 지하교회 카타콤과 같은 도피 장소 죽림굴 얘기다.

울산 울주 간월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허리 부분까지는 신록이 우거져 있지만, 정상 부근은 휑하다. 5월은 돼야 산 정상에 봄이 이를 듯 싶다.
누군가에게는 치열했던 삶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은신의 공간이 됐다. 고된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별칭은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낭만이 떠오르는 ‘알프스’다. 세월이 흘러 과거의 흔적은 매년 돋는 새순에 점점 묻혀졌다. 이 흔적 너머로 ‘알프스’란 이름이 어울리는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간월재 인근 죽림굴은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시대 영남지역 천주교인들의 피난처였던 곳이다. 이후 빨치산들이 숨어들었을 때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다.

경북 경주와 청도, 경남 밀양과 양산, 울산 울주 등에 걸쳐 해발 1000m가 넘는 9개의 산을 ‘영남 알프스’로 부른다. 이 중 7개의 산이 걸쳐 있는 울산 울주는 영남 알프스의 중심이다.

높은 산들이 능선으로 이어져 어디로 올라도 영남 알프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손쉽게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신불산과 간월산 능선이 만나는 간월재다. 전문 산꾼들이야 봉우리를 넘나들겠지만, 초보자들이 어렵지 않게 풍광을 즐기기엔 간월재에서 681고지를 지나 파래소 폭포로 오는 3∼4시간 정도 코스가 좋다. 멋진 풍광뿐 아니라 영남알프스에 묻힌 역사의 흔적까지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발은 인공암벽장이 있는 복합웰컴센터에서 하는 것이 좋다. 센터에서 출발해 15분쯤 가면 홍류폭포와 간월재 갈림길이 나온다. 간월재로 향하는 길은 아이들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수월하다. 이맘때는 벚꽃과 진달래꽃 등이 피어 있어 여행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1시간 30분 정도면 간월재 억새밭에 이른다. 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황홀한 억새의 은빛 바다를 기대해선 안 된다. 지금은 억새 줄기만 남아 있다. 양편에 있는 간월산과 신불산 어디를 올라도 좋다. 오르는 길에 내려다보는 해발 900m 간월재의 억새밭 풍광은 이색적이다. 간월산 정상까지는 800m, 신불산까지는 1.6㎞ 정도를 더 걸으면 된다. 정상을 찍고 다시 간월재로 내려오면 된다.

 
간월재 억새밭 풍경.

간월산 중턱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허리 부분까지는 신록이 우거져있지만, 정상 부근은 휑하다. 이곳이 높은 곳임을 알 수 있다. 5월은 돼야 산 정상에 봄이 이를 듯싶다.
옥봉이라 불리는 681고지는 빨치산들의 지휘소가 있었던 곳이다. 30년 전 공비토벌을 기념해 3층 전망대를 조성했다.

간월재에서 방향을 잡아 임도를 따라 20분 정도 가면 죽림굴을 만난다. 박해를 피해 미사를 드린 교인, 명을 달리한 교인 등을 기리기 위한 표식들이 곳곳에 있다. 죽림굴 앞은 벼랑이다. 계곡은 보이지 않지만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이 맘 놓고 들은 세상의 소리는 이 계곡물 소리가 유일했을 듯싶다. 
간월재에는 나무의 형태 및 구조 등이 그대로 굳어져서 화석화된 규화목이 있다.
죽림굴은 이후 빨치산들이 영남알프스에 숨어들었을 때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다. 죽림굴에서 1시간가량 임도를 따라 걸으면 옥봉이라 불리는 681고지를 만난다. 1948년부터 1953년 6·25전쟁 직후까지 이 지역에서 활동한 빨치산들의 지휘소가 있었던 곳이다. 30년 전 공비토벌을 기념해 3층 전망대를 조성했다. 681m 옥봉은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사방으로 둘러쳐 있는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사방 어디로 상대방이 나타나도 시야가 확보돼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다. 결국 육군으로 토벌이 힘들어, 전투기로 폭탄을 투하해 빨치산 본부를 초토화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신불산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길로 내려오면 파래소 폭포를 만난다. 기우제를 지내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바래소에서 유래했다는데, 푸른 물빛에 파래소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파래소 폭포는 기우제를 지내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바래소에서 유래했는데, 푸른 물빛에 파래소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영남 알프스에 숨어 살며 토기나 옹기 등을 구워 생계를 유지한 천주교인들의 후손 역시 옹기 만드는 일을 많이 했다. 울주 외고산옹기마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1950년대 경북 영덕에서 옹기점을 하던 허덕만씨가 자리를 잡으며 마을이 됐다. 전쟁 영향으로 부산 등 남부지방에 피란민이 몰려 옹기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지금은 수요가 많이 줄었다. 명맥을 잇기 위해 매년 옹기 축제를 연다. 다음달 4일부터 나흘간 외고산옹기마을에서 옹기 축제가 열린다.
울주 외고산옹기마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속 옹기마을로 매년 옹기 축제를 연다.

울주(울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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