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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정봉주와 김기식, 그리고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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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17 21:39:35 수정 : 2018-04-17 21: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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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논리로 이중성 덮을 수 없어
잣대의 공정성 판단도 국민의 몫
‘그날의 영수증’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정봉주 전 의원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성추행 의혹에 그만큼 집요하게 반박하고 관련 보도 매체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벌인 이는 없었다. ‘나꼼수’ 동료인 김어준은 지상파방송에서 “사건 현장에 없었다”는 정씨 입장을 두둔했다. 정봉주는 문재인정부에서 유일하게 특별사면된 정치인이다. 더욱이 자신을 구속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처지다.

‘MB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정봉주의 화려한 정치판 복귀는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요즘 ‘방송권력’으로 불리는 김어준까지 나섰으니 그의 성추행 의혹은, “미투 운동이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김씨 ‘예언’대로 ‘음모론’으로 치부될 만했다. ‘그날의 영수증’이 나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황정미 편집인
그가 성추행 의혹을 시인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한 건 아니다. 여전히 “전혀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다. ‘미투’ 국면에 주변의 남성들은 묻는다. “왜 여성들은 몇 년 전 이야기를 지금 폭로하나.” 이에 대한 답변은 내가 남성들에게 묻는 “왜 사회적 지위의 정점에 있는 남성들이 유독 여성 문제에 취약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만큼 한 가지로 정리하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이유를 꼽자면 그 사람의 이중성을 까발리려는 의도라고 본다. “내가 아는 ○○○는, 당신들이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는 시위다. 정씨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피해자도 서울시장 출마 움직임을 보고 “파렴치한 사람에게 그런 큰 일을 맡겨선 안 된다”는 생각에 폭로를 결심했다고 했다.

결국 중앙선관위의 위법 판단을 받고서야 사퇴한 김기식 파문에서도 정봉주 파문 당시 대응 논리가 그대로 작동했다. “사실과 다르다”는 부인으로 시작해 “반개혁 세력의 흔들기”라는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식이다. 김기식 파문의 본질 또한 이중성, 신뢰의 문제였다.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을 세 차례 다닌 것만으로도 친정인 참여연대가 밝힌 “비판받아 마땅한 부적절한 행위”였다. “기업 돈으로 출장가서 자고 밥먹고 체재비 지원받는 게 정당하냐”고 공직자들에게 따져묻던 김씨가 자신의 출장은 ‘관행’이라고 해명하니 이중적이라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근본적 (금융)개혁을 위해 발탁한 ‘과감한 선택’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해서도 그의 신뢰 추락은 치명적이었다.

그런데도 선관위까지 동원하며 그의 낙마를 늦춘 건 “금융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에 흔들려선 안 된다”는 진영 논리였다.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는 대통령의 입장과 맥이 닿아 있다. 여당 핵심 인사들도 김기식을 ‘희생양’으로 만들면 포악한 야당과 보수 세력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 제2, 제3의 ‘먹잇감’ 사냥에 나설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그들에게는 리더십 상실을 지적하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던 진보 성향 매체도 ‘보수 언론 프레임에 말렸을’ 뿐이다. ‘386 세대’ 인사들을 비판했다 퇴출된 팟캐스트 출연진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진영 논리를 “‘한번 우리 편이면 영원한 우리 편’이라는 조폭 논리”라고 꼬집었다.

여의도를 덮친 댓글 조작 파문이 어찌 흘러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 ‘복심’으로 알려진 김경수 의원이 등장하면서 여권 반응은 미묘해졌다. 청와대 측은 한 달 전 ‘오사카 총영사’ 추천건으로 댓글 조작 주범 ‘드루킹’ 존재를 알았으면서도 이번 사건이 드러난 뒤 침묵했다. ‘드루킹’이 체포 직전 페이스북에 썼다는 “깨끗한 얼굴 하고 뒤로는 더러운 짓 했던 이들”이 누군지는 검경이 밝혀야 할 일이다. “김경수와 청와대, 민주당은 피해자”라고 선부터 긋는 건 또 다른 진영 논리로 비친다. 특정 세력에 의해 여론이 만들어지고 뒤틀린 댓글 조작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문재인정부야말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그 잣대가 네 편, 내 편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는 없다. 잣대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것도 국민 몫이다. 정봉주도, 김기식도 반대파 흔들기에 떨어져나간 게 아니다. 민심이 흔들렸을 뿐이다. 신뢰, 기대가 클수록 실망감도 큰 법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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