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찌감치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됐는데 내용은 한 일본 여자에 관한 것이었다. 총독부 관리의 딸이었던 그녀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지대장과 결혼해서는 남편 성을 딴 한국 이름으로 바꾸고, 기모노 대신 치마 저고리를 입은 채 한국의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는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였다. 광복이 되고도 그녀는 고향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의 고아들을 위해 헌신했다는 내용은 동화에서나 있음직한 이야기였다.
나중에 나는 정말 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회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는 그런 조금은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그 사람은 최근에는 ‘유엔 세계고아의 날’ 제정 청원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을 돕는 일에 자신의 평생을 바쳐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삶을 먼저 살피고, 그들을 위해 사는 일.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으면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율배반적인 이 말은 그만큼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 사람을 지켜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바친 그 시간은 더 큰 열매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사람처럼 타인의 삶을 존중하며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타인을 인정하는 그러한 자세를 배운다면 세상은 그래도 더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지나치게 ‘나’만을 위한 삶을 살지는 않는지,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다.
은미희 작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