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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가를 위한 소설가 한승원의 '아름다운 평론'

입력 : 2018-04-18 03:40:00 수정 : 2018-04-17 21: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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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업노트에서 ‘햇볕 오빠’라 칭해 소설가 한승원이 어느 화가를 위해 평론성 글을 써 줘 눈길을 끌고 있다.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한정선 작가의 도록에 기고를 했다. 화가 한정선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정글속에서 하루하루를 생존해 나가면서 지속적으로 마모되고 무기력해져 길들여지는 인간군상을 ‘늑대의 시선’으로 우화를 그려내는 작가다.

소설가 한승원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녀는 생명력 왕성한 다산성의 44세 어머니의 9남매 중의 막내 늦둥이로 한 겨울의 혹한이 거듭되는 날에 태어났는데, 태어나는 자는 다 저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지만, 많은 자식들 키우기와 삶에 지친 아버지는 그 핏덩이를 키우지 말고 자식 귀한 집에 주어버리거나 어쩌거나 하자며 강보에 싸서 윗목에 밀쳐 놓았다. 어머니가 끌어다가 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젖을 먹여 키웠다고 나는 들었다.

그녀가 하마터면 버려질 뻔한 슬픈 운명의 귀엽고 예쁜 장난감 인형 모양새인 젖먹이였을 때에, 문학청년인 오빠는 그녀를 검누른 점퍼 앞자락 속에 캥거루 새끼처럼 집어넣고 눈 초롱초롱한 얼굴을 살짝 내밀게 한채 마을을 돌며 자랑을 했다. 겅중겅중 걷는 오빠의 활보에 따라 어지러움을 익히며 세상구경을 하고 자란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5학년에 올라가려 했을 때 중학교 1학년으로 월반하여 세 살 위의 언니들과 함께 공부를 했고, 이후 소설가 오빠의 집안에서 여중 여고를 거쳐 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할때까지 문학적인 분위기를 호흡하며 그림을 그렸으므로 그녀의 그림에는 시적인 문기(文氣)와 서사가 넘쳐난다. 가뜩이나 한반도 남단인 전남 장흥의 한 섬에서 출렁거리는 쪽빛바다와 찐득거리는 갯벌을 밟으며 성장한 그녀의 몸에는 해양성의 야성과 신화가 뿌리하고 있다. 그녀, 한정선은 나의 막내 여동생이다. 그녀가 성장해온 과정을 딸처럼 지켜본 나는 그녀의 그림들의 감추어진 비의에 대하여 자유롭게 꿈꾸어오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을 팔불출처럼 누설한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신이 창조한 우주의 카오스와 코스모스를, 붓에 물감을 묻혀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신의 뜻, 우주의 섭리를 읽어낸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천기누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정선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11살짜리를 데려다 대학까지 키우고, 시들병에 걸린 나를 보듬어 살려낸 제 2의 아버지 어머니, 해산 한승원 햇볕 오빠와 감오 언니께 늘 감사하다. 두 분께 ‘소크라테스의 닭’을 돌려 드리지 못할까 싶어 초조하다”고 털어 놓았다.”

아름다운 인연이다. 어찌됐건 한정선 작가는 소설가 한승원의 여동생이자, 한강 작가의 고모가 되는 셈이다.

물리학자들이 꽉 채운 칠판 위의 각종기호들은 난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것을 머릿속 이미지들로 그려가며 전개시킨 결과물이다. 글을 쓰는 이들도 매한가지다.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문기있는 집안에서 자라게 된 한정선 작가의 그림 그려 나가는 방식도 같다. 예부터 문기 있는 이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한정선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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