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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매매 아동·청소년'은 피의자일까 피해자일까

입력 : 2018-04-16 19:43:07 수정 : 2018-05-08 09: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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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법’ 국회 계류 2년… 부처 간 입장차 못 좁혀 / 여가부 “피해자로 일률 규정” / 아이들 재판 등 두려워 신고 못해 / 성매수한 어른들 잘못… 보호 필요 / 법무부 “현행 보호처분 유지” / 피해자 규정 땐 ‘교화’ 강제 못해 / 재범 우려 등 신중한 검토 필요
지적장애가 있는 A양(당시 13세)은 2014∼2015년 전국 법원을 돌며 자신이 성폭행당한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2014년 6월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망가뜨린 A양은 겁에 질려 가출했고 인터넷을 통해 재워주겠다는 성인 남성 6명을 만났다. A양은 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잠자리를 제공받고 먼저 찾아갔다는 이유 등으로 수사기관은 사건을 성매매로 분류했다. A양은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우울증을 보였고 정신병원 신세까지 졌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재판과정에서 A양 어머니가 너무 비참해하며 못 견뎌 했다”고 전했다.

A양은 피의자인가 피해자인가.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A양처럼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 지위를 둘러싸고 법무부와 여성가족부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양측 장관이 나서 협의했으나 접점을 못 찾는 분위기다. 여가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2조에 규정된 ‘대상아동·청소년’을 모두 ‘피해아동·청소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성매매 대상이 된 경우 모두 피해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야 수사·재판과정에서 자발성과 성매매 여부를 다투면서 아이들이 2차 피해를 볼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6년 국회에서 성매매 아동·청소년 지위를 ‘피의자’에서 ‘피해자’로 바꾸려는 개정안이 발의된 후부터 이런 논의는 있었다. 지난해 19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젠더폭력 근절’ 일환으로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규정해 성 착취를 근절하겠다고 공약했다. 이후 여가부가 법무부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했으나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양 장관과 차관들이 국무회의와 차관회의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아는데,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성년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일률적으로 피해자로 규정할 경우 재범 우려 등 문제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내부 의견도 둘로 갈려 있다. 성매매 아이를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측은 피의자 신분에서는 아이들이 소년원 송치 등 소년보호처분을 두려워해 성매매 신고를 꺼리게 된다고 지적한다. 2012∼2013년 경기도 부천에서 가출한 B양(당시 13세) 등 10대 소녀 4명은 잠자리 제공을 빌미로 한 성인 남성에게 연이어 성폭행을 당했지만 소년보호처분을 두려워해 신고를 못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발견한 한 지역시민단체를 통해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소년보호처분은 형사처벌은 아니지만 범죄기록이 남고 재판장을 가는 길에 수갑도 차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2014년 김해여고생 살인사건의 가해 여성 1명도 과거 같은 가해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성매매로 너도 처벌받는다”는 말에 경찰서를 나왔다고 다른 사건 수사과정에서 진술했다.

공익변호사단체 ‘사단법인 두루’ 강정은 변호사는 “현행 법률상 피의자 신분인 성매매 아동·청소년은 국선변호인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며 “극단적으로는 자신에게 성매매를 강제한 가해 청소년들과 같이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피의자 신분을 유지해야 한다는 측은 피해자로 규정할 경우 소년원 송치 등 법적으로 아이들을 교화할 방법이 없게 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로 규정되면 법원이 교육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김현수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이들을 일률적으로 피해자로 규정하면 (강제적인) 보호처분을 할 수 없어 이들을 교화할 기회를 놓친다”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도 “피해자로 접근할 경우 향후 아이들을 상담이나 위탁시설에 보낼 때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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