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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未亡)’은 남편이 죽을 때 따라 죽지 못하고 홀로 남아 있음을 뜻한다. 미망인은 남편을 여읜 부인이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고대 북방민족의 순장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학자 좌구명이 펴낸 것으로 알려진 ‘춘추좌씨전’에 처음 쓰였다. 초나라 재상 자원이 선왕의 부인을 유혹하려고 궁 옆에서 만(萬)이라는 춤을 추게 하자 부인이 “선왕은 이 춤으로 군사훈련을 했는데 지금은 미망인 곁에서 이러니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새 임금이 어려 정사를 맡을 수 없을 때 수렴청정을 하던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스스로를 미망인이라 부르곤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예종 때 수령으로 부임하는 자가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가기를 원하자 신하들이 “부인으로서 미망인은 아들을 따르는 것이 효도의 도리에도 관계되고, 또한 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니, 마땅히 옛날대로 하소서”라고 임금에게 아뢰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망인이란 말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가부장제 사회의 유물이다. 지금은 남편 잃은 사람이 스스로를 미망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미망인이라 부르면 펄쩍 뛸 일이다. 어감이 고약해진다. 그런데도 남자가 죽으면 그의 아내를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욕보이려는 의도는 아니다. 말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버릇대로 쓰기 때문이다. 미망인이 과부를 높여서 이르는 말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서울시가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차별적 의미가 담긴 13개 행정용어를 고쳤는데, 그중 하나가 미망인이다. 앞으로는 ‘고(故) OOO씨의 부인’이라고 쓰기로 했다. 미망인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행정용어로 쓰였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긴 국립국어원도 미망인이란 말을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했다가 작년 말에야 ‘남편을 여읜 여자’로 수정하고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는 각주를 달았다. 4차산업혁명을 외치는 시기에 아직도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어의 단면을 보게 된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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