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립민주주의기금(NED)은 지난해 중국의 권위주의체제에 기초한 대외영향력 확대전략을 서방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와는 다른 ‘샤프 파워’(sharp power)라고 규정했다. 또한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2월 중국의 ‘샤프 파워’ 특집기사에서 중국이 막대한 경제력을 무기로 압박, 회유, 위협 등을 통해 해당 국가나 대상 기관의 자기검열을 유도하고 정보조작을 시도해 스스로 복종하도록 강제한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소위 ‘샤프 파워 중국’에 대해 대단히 영리하게 대응해온 나라로 평가된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과 함께 세계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의 시진핑을 위한 잔치행사였던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정상회의가 열린 9월 3일 6차 핵실험을 단행해 중국의 체면을 심각히 손상시켰다. 이에 중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의 대북제재로 북한을 압박했다. 그런데 신년 초부터 시작된 북한의 현란한 외교 전략에 따라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예고되면서 소위 ‘차이나 패싱’이 우려되자 극적인 북·중정상회담이 성사돼 ‘대대로 이어진 혈맹’이라는 수식어가 다시 등장했다. 북한의 강대국에 대한 등거리 외교 전략이 다시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에서는 극적 협상을 통해 북한이 친미비중(親美非中)국가인 ‘베트남모델’로 전환될 가능성까지도 분석되고 있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
그런데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한류 등 문화적 파워도 세계적 수준이 된 한국은 중국의 ‘샤프 파워’에 대해 대단히 무기력하다고 평가된다. 이 문제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보수 박근혜정부는 ‘사드’ 도입과 관련해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전까지 중국 눈치를 보면서 소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진보 문재인정부는 수동적인 ‘사드’ 배치 이후 중국에 대해 3NO(미국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사드 추가배치 검토, 한·미·일 군사동맹 등 불가)정책 약속을 통해 여전히 눈치 보기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은 동북아정세의 게임체인저(혁신 주도자)가 됐다고 평가된다. 이에 따라 동북아정세의 대변동이 시작됐다. 이미 열린 북·중정상회담, 4월과 5월에 예정돼 있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그 대변동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가전략, 통일전략, 동북아전략이다. 특히 21세기 동북아정세에서 ‘샤프 파워 중국’에 대한 대응전략이 가장 중요하다. 그중에는 한·미동맹이 냉전시대의 동맹, 탈냉전시대의 동맹관계를 넘어 민족·국가 간의 무한 국익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시기에 어떻게 진화, 발전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이 그동안 개인의 자유와 인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에 기초해 쌓아올린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역사적 성과는 유실되고 나아가 주권국가로서의 지위마저도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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