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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체코·슬로바키아] 정들자 이별…대자연의 감동 가슴에 안고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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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12 10:00:00 수정 : 2018-04-18 0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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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날
케이블카가 하이 타트라 정상인 롬니츠키봉 승강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산 아래로 내려간다. 온통 하얀 안개로 둘러싸여 있던 시야가 어느 순간 환하게 밝혀지더니 초록 대지와 파란 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 케이블카 중간 환승역인 스칼나테 플레소까지 내려오니 산봉우리의 매서운 날씨는 거짓말처럼 잊힌다.

만년설이 녹아 형성된 에메랄드빛 호수에는 방금 내려온 설산이 거울처럼 비친다. 마치 봄의 왕국에서 마법의 거울로 겨울나라를 비춰보는 듯하다. 호수 위로는 행글라이더가 유유자적 하늘을 활공하고 있다. 케이블카가 환승역에 도착하니 작은 거울처럼 보이던 호수가 눈앞을 가득 채운다.

슬로바키아 하이 타트라 정상인 롬니츠키봉에서 케이블카 중간 환승역 스칼나테 플레소까지 내려오니 산봉우리의 매서운 날씨는 거짓말처럼 잊힌다. 호수 위로는 행글라이더가 유유자적 하늘을 활공하고 있다. 타트라 산맥 주변은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타트라 산맥 주변은 스키장만 50개 이상 되는 겨울스포츠 천국이다. 봄이 되면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이용해 자연을 즐기는 등산객과 MTB족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늘 위로는 형형색색의 행글라이더와 패러글라이더가 수놓는다. 사계절 모두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너무 맑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여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투명한 호수는 바라보는 이의 마음마저 맑게 한다. 걸어서 올라온 등산객들도 호수 주변에서 지친 다리를 쉬고 또 다른 이정표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들 틈에 섞여 호수를 한참동안 바라보니 오랜 여행으로 지친 마음마저 정화되는 듯하다. 겨울과 봄을 오갔던 타트라의 여운을 뒤로하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처음 출발지로 되돌아 내려왔다.

산 아래에 도착하니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이 불그스름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슬로바키아의 오래된 광산 도시 반스카슈티아브니차의 교회 앞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보았던 조개비가 그려진 안내판이 서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르는 순례길은 유럽 곳곳에서 이어진다.
주변이 노을을 받아 붉게 물들어갈 즈음 반스카슈티아브니차라는 슬로바키아에서 오래된 광산 도시로 향했다.

타트라 산맥에 위치한 이 도시는 독일인이 금과 은을 캐려고 건설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에 합스부르크왕가의 중요한 광산 도시였다. 1962년에는 광산기술자 양성전문학교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도시 곳곳에 성당과 요새 등 역사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 금과 은의 채굴로 형성된 풍요로움은 도시의 번영을 가져왔다. 뛰어난 공학자와 과학자를 통해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과 교회, 우아한 광장과 성들을 만들어냈다. 당시 광산 기술과 역사적 건축물이 남아있어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슬로바키아의 산책하기 좋은 작은 도시는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이끈다.
산책하기 좋은 작은 도시는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이끈다. 성모 마리아 교회에 이르니 13세기 로마네스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아담한 교회가 거대한 종탑을 이고 서있다. 광업을 수호하는 성인 바르보라를 기념하여 지어진 교회다.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예배당 내부를 구경하니 오랜 세월 광산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안전과 일확천금을 함께 빌었을 광부들의 경건한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금을 캐던 당시 모습을 잘 보존한 광산박물관과 광산터널 등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페스트 기념 기둥이 도시를 보살피고 있는 성 삼위일체 광장을 둘러본 후 광부들의 도시를 떠나야 했다.

중세 분위기가 가득한 자그마한 입구의 식당 문을 들어서니 낯선 정원이 펼쳐지고 중세기사의 장식품들이 눈에 띈다.
광부들의 도시에서 멀지 않은 자그마한 도시에서는 빛바랜 분홍색과 하늘색, 하얀색의 이국적인 분위기의 건축물을 찾았다. 1984년에 완성된 비잔틴, 로마네스트, 르네상스, 이슬람 무어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교회로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한다. 교회 앞에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보았던 조개비가 그려진 안내판이 서 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한 명이었던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르는 순례길은 유럽 곳곳에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산티아고까지 2979㎞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기독교 3대 성지 중 하나인 산티아고는 십자군 전쟁의 패배로 예루살렘 순례길이 막힌 후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순례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순례를 위해, 마음의 치유와 정화를 위해 가장 많이 걷는 길로도 유명하다. 많은 여행서와 소설, 그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길은 통상 프랑스의 국경도시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가는 800여㎞를 의미한다. 현재는 이곳에서부터 걷는 이들이 있지는 않겠지만 먼 옛날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3000여㎞를 걸어 성지순례를 했을 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잘 구운 고기에 치즈의 풍미가 더해진 슬로바키아 전통 음식. 전통적인 요리법으로 조리된 지역 특산물은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과 잘 어우러진다.
마지막 저녁을 맞이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호텔에서 추천한 역사 가득한 작은 마을에서 슬로바키아의 마지막 저녁을 보내기로 했다. 중세 분위기가 가득한 자그마한 입구의 식당 문을 들어서니 낯선 정원이 펼쳐지고 중세기사의 장식품들이 눈에 띈다. 

특별히 슬로바키아 전통의 맛을 찾아 메뉴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지역 특산물을 전통적인 요리법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다. 슬로바키아 전통 음식은 치즈나 유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을 듯하다.
 
슬로바키아 현지인들이 일을 마치고 식당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잘 구운 고기에 치즈의 풍미가 더해진다. 특히 슬로바키아 요리는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과 잘 어우러진다. 동쪽 토카이 지역부터 서쪽 소카르파티안까지 와인 지역 어디에서나 생산되는 질 좋은 와인과 전통음식은 또 다른 자부심이라 한다. 낮 시간에 한 잔씩 즐기던 맥주와 함께 와인도 다소 거친 이곳 자연을 닮았다. 쌉싸래한 와인이 전통음식과 어우러져 중세의 귀족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을 전해준다.

일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온 손님과 또 다른 모임을 하는 듯한 손님이 어우러져 훈훈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낯선 이방인에게 모두가 친절한 웃음을 건넨다. 처음에는 동유럽 특유의 큰 덩치가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수줍은 얼굴에 정이 들었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슬로바키아에서의 마지막 저녁이 알싸한 와인과 함께 저물어간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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