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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F학점 경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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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09 21:32:03 수정 : 2018-04-09 21: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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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드는 위기 징후들
하이에나 정글로 변한 동아시아
‘1997년 해피엔딩’ 역사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
1997년 11월.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금융위기, 외환위기, 국가부도…. 점점 달라지는 용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왜 갑자기 벌어졌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은 모두가 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나라 간판’을 내려야 했을지도 모를 21년 전의 위기. 겨우 수습했다. 구제금융으로 외환을 메우고,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를 화두로 재건에 나섰다. 반도체, 스마트폰을 앞세운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은 그 결과다.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1997년 위기의 끝은 해피엔딩이었다. 드문 천운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그 끈을 잡고 버틴다.

강호원 논설위원
결말은 늘 해피엔딩일까. 그럴 턱이 있는가. 부도 문턱에 선 기업. 이겨내면 거름이 되고, 이겨내지 못하면 망한다. 파산 후에는 빚잔치가 기다린다. 나라 경제도 하나 다르지 않다.

돌아보면 ‘아찔한 일’ 하나가 있다. 부도가 나자 자산 헐값 매각이 시작됐다. 정부는 국유재산을 팔고, 기업은 알짜 자산을 팔았다. 과일처럼 썩지도 않는 알짜 자산을, 어제 만 원이던 것을 오늘 천 원에 살 수 있으니 모두 달라붙는다. 핫머니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 헐값 자산을 사들인 세력은 주로 서구 자본이다. 제일은행을 산 뉴브리지, 외환은행을 산 론스타는 사모펀드 탈을 쓴 핫머니다. 주목되는 것은 일본 자금이다.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이 헐값 자산을 그러모았다면? 지금쯤 수많은 기업과 금융회사는 일본 기업으로 변해 있을 게다. “일본 경제를 따라잡는다”고? ‘일본천지’가 된 마당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일본의 힘은 대단하다. 그때도, 지금도 그렇다. 엔화 자금은 국제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한다. ‘와타나베 부인’이 움직이면 시장은 출렁인다. 그즈음 사건 하나. 외환위기를 수습한 뒤 국내 통신시장을 70% 가까이 점유한 SK텔레콤과 일본 NTT도코모가 제휴를 추진했다. 눈을 둥그렇게 뜨게 한 것은 시가총액 차이다. 딱 10배 차이가 났다. NTT도코모 지분 5%를 팔면 SK텔레콤 지분 50%를 살 수 있는 구조다. 외환위기 때 마음만 먹으면 일본은 수많은 한국 기업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아찔했던 것은 바로 이 사실이다.

일본은 왜 우리의 헐값 자산을 사들이지 않았을까. 기계왕국·전자왕국 일본은 작은 나라의 경쟁력 없는 자산을 살 이유를 느끼지 못했을지 모른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공영의 메커니즘도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반박을 할지 모르겠다. “우리 경제는 커지지 않았느냐”고, “이젠 그런 위험은 없다”고. 과연 그럴까.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하면 일본은 한국의 3배다. 기업 시가총액도 엇비슷하다. 위기가 닥치면 어찌될까. 차이는 10배, 20배로 다시 벌어진다.

경제위기가 또 터지면 그때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을까. 극우 아베 신조 총리는 이런 명령을 내리지 않을까. “일본은행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서라도 한국을 사들이라.” 일본만 그럴까. 중국은 더할 수 있다. 기술 장벽을 넘기 위해 돈 보따리를 싸들고 해외자산을 그러모으지 않는가. 시진핑 주석은 또 무슨 말을 했던가. “한반도는 중국의 역사”라고 했다. 약한 상대를 발아래 두는 패권주의는 난무한다.

위기는 시시각각 밀려든다. 보호무역주의, 무역전쟁, 금리인상…. 흐름이 경제위기를 잉태한 1990년대 초반과 똑같다. 그 끝은 무엇일까. 수출이 멍들고, 적자가 나고,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끝날까. 아닌 것 같다. ‘파산의 아수라판’이 어른거린다.

경제를 보나, 정치를 보나 한반도는 하이에나가 들끓는 정글 한복판에 서 있다. 위기가 닥치면 돈 놓고 돈 먹는 투기판이 아니라 ‘병탄판’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기에 위기는 먹잇감과 똑같은 말이다. 해피엔딩? 어리석은 기대일 뿐이다.

선진국보다 못한 성장률에 만족하는 ‘F학점 경제’. 경쟁력 강화 외침은 들리지 않고, 혈세 살포를 미화하는 화려한 수사(修辭)만 들끓는다. 그렇게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내기를 한다면 ‘지킬 수 없다’는 쪽에 걸 수밖에 없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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