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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전사로 7년 만의 무대… 악몽 꾸며 연기”

입력 : 2018-04-08 21:12:00 수정 : 2018-04-08 2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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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엘렉트라’로 돌아온 배우 장영남 “초반에 악몽을 꾸다 깨곤 했어요. 꿈속에서 당장 공연해야 하는데 대사를 까먹은 거예요. 연습도 전혀 안 돼 있고.”

배우 장영남(45)은 한 달 전까지 악몽에 시달렸다. 연극 ‘엘렉트라’ 대본 리딩(동작연기 없이 읽는 단계) 연습에 들어간 즈음이었다. 5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오랜만에 연극하는 거라 살 떨릴 정도로 긴장했던 것 같다”고 했다. 악몽을 꾼 날이면 그는 운전하는 동안 ‘영남아 괜찮아, 꿈이야’ 하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배우 장영남은 “작품이 끝나고 한참 지나서 문득 ‘그때 이렇게 리액션하는 게 좋았을 텐데 왜 이제야 생각났지’ 하게 된다”며 “이런 걸 보면 연기에는 정답이 없고, 마지막 무대가 끝나도 완벽한 ‘엘렉트라’는 없기에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LG아트센터 제공
그만큼 7년 만의 무대라는 중압감은 막대했다. 배우 장영남이 2011년 ‘산불’ 이후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선다. 오는 26일∼5월5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연극 ‘엘렉트라’를 공연한다. 한태숙이 연출하고 고연옥이 각색한 작품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딸 엘렉트라. 상대역인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는 서이숙이 연기한다.

이 연극은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 ‘엘렉트라’를 현대로 가져왔다. 신화 속 엘렉트라는 동생 오레스테스와 함께 어머니를 죽인다. 내연남과 손잡은 어머니가 트로이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했기에 복수에 나선다. 그러나 연극 속 엘렉트라는 공주가 아닌 게릴라 여전사다. 장영남은 “강해보이지만 속으로 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는 인물”이라며 “이것이 정의라고 울부짖지만 속으로는 과연 이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정당성을 찾는, 결핍으로 비틀어진 인간”이라고 소개했다.

“엘렉트라는 게릴라 부대를 만들어 신전·마을을 파괴해요. 새 세상을 만들자는 명분으로요.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죠. 극은 엄마를 인질로 잡아오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실 엘렉트라는 신전 파괴와 살상에 대한 죄의식을 안고 있어요. 게다가 대의를 내세웠지만 알고 보면 사적 복수 때문에 이 모든 일을 벌인 거거든요. 이 복수가 옳은지, 정의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극이에요.”

그는 “엘렉트라의 복잡한 내면이 관객에게 다 보여질지 모르겠다”고 염려했다. “엄마의 정부를 본의 아니게 남자로 봤던 데다, 그 정부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했던 상처도 있고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태숙 연출의 주문도 만만치 않다. 장영남은 “엄마가 딸을 목 조르고 싶은 순간 손을 갖다 대는 게 아니라, 말과 포즈로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식이셔서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그와 한 연출의 작업은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2002∼2004년 ‘광해유감’ ‘서안화차’ ‘꼽추, 리처드 3세’의 조연으로 만났다.

대중에게는 드라마와 영화 속 ‘믿고 보는’ 친근한 배우로 알려졌지만, 그의 고향은 연극이다. 한 연극팬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무대를 장악하는 미모에 연기까지 잘하는, 대학로에 드문 스타”였다. 장영남이 연기로 들어선 계기는 소소했다. “어느 날 본 통학 차량과 그 안의 학생들이 너무 예뻐서”라는 이유로 계원예고에 진학했다.

“선생님이 ‘너 떨어진다’며 계원예고 원서를 안 써주시려 했어요. 숫기 없고 조용했거든요. 키가 작아 출석번호도 3번에 이만 한 안경을 끼고 있고. 선생님한테 졸랐죠. ‘써주세요!’도 아니고 작은 소리로 ‘한번만 써주시면 안 돼요’ 하고.”

이후 서울예대 연극과를 거쳐 1995년 극단 목화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데뷔했다. ‘힐 신고 통바지 입은 새침데기’였다는 그는 첫 연극에서 한 달 만에 잘렸다. 치욕스러웠다. 극단 사람들 볼 면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극단을 나오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제가 똥자존심이 강하다”고 했다.

“꿋꿋이 버텼어요. 극단을 나오면 더 바보가 될 것 같았어요. 아마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라면서도 딸만 다섯인 집의 막내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극단에서 사람들 마음을 놓이게 하는 사람이고 싶었기에 늘 조바심 냈고, 편안하게 연기하지 못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연기하게 한 계기이지만, 한편으로 트라우마이기도 한 것 같아요.”

“한 번도 느긋하고 여유롭게 연기를 즐기지 못한 것 같다”는 그는 최근 ‘내가 나를 괴롭히고 채찍질이 심했구나’ 하고 깨닫고 있다. 이제는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조금은 내려놓으려 한다.

“앞으로 남은 연기 인생을 어떻게 말랑말랑하게 만들어갈까 찾는 중이에요. 너무 단단하게만 생각한 거 아닌가 싶어요. 삶도 유연하고 말랑하게, 어떤 공이 와도 아프지 않고 잘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쿠션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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