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가 실질적으로 벌어들인 소득인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은 1인당 약 1875만2000원(1만6573달러)이다. 전년보다 4.1% 늘어난 것이지만 치솟는 밥상물가, 외식물가를 생각하면 많이 올랐다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 가계의 여윳돈은 50조9000억원으로, 200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적다. 국민총소득(GNI)에서 해외송금액을 뺀 국민총처분가능소득(GNDI) 가운데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56.3%에서 지난해 56%로 줄었다. GNDI는 지난해 5% 증가했다. 국가경제가 성장해도 가계 몫이 점점 줄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가계는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최종소비지출은 48.1%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출 내역을 분석해 보면 의식주 등 필수 생활비는 어쩔 수 없으니 의류, 담배나 술, 여행 등 여가생활부터 줄였다.
문제는 이 같은 우울한 상황이 가계만의 일이란 점이다.
지난해 상장사들은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의 순이익 합계는 119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8.2%나 급증했다. 그동안은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수익을 낸 것이었다면 지난해는 양적, 질적으로 개선된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글로벌 경기 회복세와 반도체 호황으로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이익이 크게 개선된 덕분이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2016년 121조원에서 지난해 139조원으로 14.9% 증가했다.
정부 곳간도 넉넉해졌다. 세금이 많이 걷혔다. 지난해 국세 수입은 전년보다 22조8000억원 늘어난 265조4000억원이다. GNDI 가운데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1.3%에서 지난해 23.8%로 높아졌다.
국가가, 기업이 번 돈이 가계로 흘러들고, 다시 가계가 소비를 해 기업과 국가가 부유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지금 경제 모습은 이 흐름에 어디가 막혀 있음을 보여준다.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확대로 수출 전선이 위태로운 지금, 내수가 부진하면 경제성장을 위한 두 바퀴가 모두 멈추는 격이 된다. 한·미 금리역전에 따른 외국인 투자금 유출에 선제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살아나지 않는 내수 탓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진경 경제부 차장 |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국민은 소득도 늘지 않고, 소비도 하지 못하는데 소득 3만달러 시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진경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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