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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언인가, 변화인가…사우디 왕세자 '이스라엘 권리' 발언 파문

입력 : 2018-04-04 15:27:56 수정 : 2018-04-04 15: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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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국왕 "팔레스타인 지지"…사우디 주요언론은 비보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2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을 인정한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하면서 파문이 번지고 있다.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가 아랍 이슬람권의 숙적 이스라엘과 손을 잡는 한계선을 넘는다면 1947년(이스라엘 건국) 이후 70년간 사실상 고착된 중동 내 역학 구도가 일대 변환기에 접어들 수 있어서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도 자기 땅을 가질 권리가 있다"면서 "평화가 정착된다면 걸프 국가, 이집트, 요르단 등이 이스라엘과 (경제적) 이익을 많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우디도 유엔이 설계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가 해법을 원론적으로 지지하지만, 이스라엘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주권을 존중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지금까지보다 더 객관적인 입장으로 한걸음 물러서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간 아랍 이슬람권의 정치 지도자 가운데 이스라엘에 대해 이런 친화적인 입장을 공개로 표명한 이는 없었다.

이를 두고 미국을 방문 중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자신의 개혁적인 면모를 보이다 단순히 실언했다는 평가가 우선 나온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의 아버지 살만 사우디 국왕은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통화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우디의 입장은 확고하다. 팔레스타인 국민은 알쿠드스(예루살렘)를 수도로 하는 독립 국가를 설립할 합법적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또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살만 국왕에게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문제에 관해 사우디의 변함없는 지지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 보면 살만 국왕과 왕세자는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혼선이 단순히 실수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압박하면서도,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와는 거리를 둬왔다. 하마스는 사우디와 경쟁 관계인 이란, 터키, 카타르가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상을 유도하면서, 예루살렘을 현상 유지함으로써 아랍 이슬람권의 명분과 지도국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지키려는 정치적으로 정교하지만 어려운 길을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사우디를 40∼50년간 통치할 무함마드 왕세자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에 빼앗긴 1967년 3차 중동전쟁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레드라인'을 넘는 과감한 발언을 했을 수 있다.

3차 중동전쟁은 아랍 이슬람권의 뼈아픈 기억이자 이스라엘을 적으로 돌린 결정적 사건이다.

따라서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번 발언은 20세기 후반 아랍민족주의 사조가 퇴색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 세대와 다른 시각으로 중동 질서를 재편하려는 사우디 차기 지도자의 큰 발걸음이라는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스라엘을 '경제적 대국'으로 규정한 것은 이스라엘을 볼 때 정치, 역사적인 구원(舊怨)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과거의 적대를 이란으로 옮겼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란을 '악의 삼각형의 첫 번째', '테러리즘의 숙주'로 지목했다. 이스라엘과 접근하는 데 아랍 이슬람권의 비판을 희석할 지렛대를 나름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접근은 여전히 민감한 문제다.

사우디 국영매체들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번 인터뷰를 인용해 보도하면서 이스라엘 관련 발언은 제외했다.

이란 매체들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했다면서 비난을 퍼붓는 동시에 이란 정부가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을 더 지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불분명해진 사우디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입장은 미국이 실제로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시점에 명확히 드러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예루살렘 선언' 뒤 사우디는 뒤늦게 이에 반대한다고 공식입장을 냈고, 지난주 가자지구 유혈사태 때도 유감 표명에 그쳤다.

반면 이란은 이를 유엔 총회, 이슬람협력기구(OIC)에 회부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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