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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서방, 對러 외교전쟁… 자국내 러 스파이 활동 힘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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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03 06:30:00 수정 : 2018-04-02 2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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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후 최대 외교관 추방전 왜… / 英 ‘러 출신 스파이 독살 사고’ 계기 / 암살 배후 러 확정 … 의문사 14건 재조사 / 메이 총리, 러 외교관 추방 강력 조치 / 유럽연합·美도 가세 … 현재 150명 달해 / 러도 같은 수의 외교관 맞추방 나서 / 미국 비롯해 각국 러 스파이 ‘눈엣가시’ / BBC “러 정보기관 타격 주는게 목표” 지난달 4일(현지시간) 영국의 소도시인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 인근에서 60대 남성과 30대 여성이 쓰러진 사건으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영국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 발견된 남자는 러시아 출신 이중스파이였던 세르게이 스크리팔(66)이었고, 함께 있던 여성은 그의 딸인 율리아 스크리팔(33)로 밝혀졌다. 이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건 러시아가 개발한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이었다.
영국의 군 관계자들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전직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이 발견된 영국 솔즈베리 공원의 벤치를 수거하고 있다. 스크리팔과 그의 딸은 러시아가 개발한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에 노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솔즈베리=EPA연합뉴스
2일 현재 이 사건으로 약 150명의 러시아 외교관이 미국과 영국 등 30개국에 달하는 국가에서 추방됐고, 러시아 역시 같은 수의 외교관 맞추방에 나섰다. 냉전시대 이후 최대 규모의 추방전으로,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왜 스크리팔을 노렸나

영국은 노비촉이 러시아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한 독성물질이며 극소수만이 이 물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러시아 정부를 스크리팔 암살 배후로 확정했다. 다른 많은 국가도 영국의 조사 결과를 신뢰하고 있다.

암살의 목표가 된 스크리팔은 과거 러시아군 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소속 장교로 1995년 영국 스파이에 포섭됐다. 그는 300명 이상의 러시아 스파이 명단 등을 영국 비밀정보국(M16)에 넘겼고 그 대가로 10만달러(약 1억700만원)를 받았다. 스크리팔의 첩보행위를 눈치챈 러시아 당국은 2006년 모스크바에서 그를 체포해 13년형을 구형했으나, 2010년 미국과의 대규모 스파이 교환 때 풀려났다. 스크리팔은 그 후에도 영국 등 다른 서방 정보기관에 정보를 계속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군 정보부에서 근무하며 영국 정보기관에 협조한 이중 스파이 스크리팔이 지난 2006년 8월 모스크바 군법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한 모습. 런던 AFP=연합뉴스
스크리팔은 러시아 입장에선 배신자였다. 스파이 교환 당시 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배신자들은 죽게 될 것이다. 믿어도 좋다. 이들은 친구들을 배신했고 전우들을 배신했다”고 말해 암살을 암시했다. 러시아 대선을 얼마 앞둔 상황에서 푸틴은 스크리팔 암살을 통해 ‘배신은 죽음’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스크리팔뿐만 아니라 기존에 영국 내에서 있었던 다른 러시아인들의 죽음도 러시아 당국이 관련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러시아 이중스파이 암살기도 사건에 대한 러시아 배후 의혹과 관련돼 추방된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온 특별기 일류신-96이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쪽 외곽 브누코보 국제공항에 도착해 있다. 타스통신 등은 추방된 러시아 외교관 60명과 그 가족 등 171명이 이날 특별기 2대를 통해 모스크바에 들어왔다고 보도했다.
◆서방세계, 강경 대응 왜 나섰나

러시아의 화학무기 사용은 국가적으로 큰 위협이다. 이번 스크리팔 부녀 암살 시도로 무고한 영국 시민들 130명 이상이 노비촉에 노출됐고, 이 중 50명 이상이 이상 증세를 보여 병원을 찾았다. 아주 짧은 시간의 노출이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러시아는 모든 화학무기를 폐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영국 정부는 이번엔 자국 내에서 치명적인 화학무기까지 사용되자 더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러시아를 향해 칼을 빼 들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러시아의 외교관 추방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처음 공개했을 때만 해도 영국 야당의 반대 목소리는 컸다.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나빠진 여론을 러시아 스파이 사건으로 무마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테러의 배후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자국 내 여론뿐만 아니라 외교 상황은 메이 총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사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 있어 러시아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오랫동안 위협적인 존재였다. 러시아는 신무기 개발을 통해 유럽을 압박하고 있고 시리아 사태를 놓고도 갈등을 빚고 있다.

단일 EU 회원국이 ‘불편한 친구’인 러시아와 맞서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영국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 카드는 회원국들의 연쇄적인 러시아 제재 반응을 끌어냈다. 여기에 미국이 동참하면서 러시아와 서방의 외교전쟁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이면엔 스파이 정보전쟁… 대립 아직 심각 단계 아냐

미국은 이번 스파이 추방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명분을 쌓는 동시에 자국 내에서 러시아의 스파이 활동을 약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5년 뉴욕 맨해튼에서 금융가로 활동하던 3명의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비밀요원을 적발했다. 앞서 2010년엔 ‘미녀 스파이’로 유명해진 애나 채프먼 등 SVR 요원 11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번에 추방한 60명 중 48명은 모두 시애틀 러시아 영사관 소속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애틀에는 미 해군의 잠수함 기지와 방산업체인 보잉사의 사업장이 있다.

다른 국가들 역시 러시아 스파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다. 지난해엔 우크라이나 총리의 통역관인 스타니슬라프 예조프가 러시아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영국 BBC 방송은 각국의 러시아 스파이 추방에 대해 “러시아에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해외에서 비밀정보를 캐내고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는 러시아 정보기관들의 능력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게 목표”라고 분석했다.

향후 상황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과거 냉전시대 같은 극한 대립 상황이 펼쳐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맞추방은 이미 예견됐던 조치이고, 일부 EU 국가가 러시아 제재에 반대 입장을 펴고 있어 서방세계가 더 이상의 대러 제재를 하기도 쉽지 않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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