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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전용시설 부족하고 대관 어려워… 동호회 운영도 ‘나홀로’

입력 : 2018-04-02 06:30:00 수정 : 2018-04-01 21: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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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체육 저변 확대 목소리 고조
힘들어도 사랑 가득 장애인 노르딕스키 유망주 봉현채(왼쪽)와 어머니 추순영 여자골볼 대표팀 코치가 30일 서울 강동구 고덕사회체육센터에서 함께 훈련을 하며 애정이 듬뿍 담긴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들 모녀는 친구 사이처럼 허물없이 지내며 밝은 에너지를 선사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동구 고덕사회체육센터에는 ‘손톱 달’ 모양의 눈웃음이 똑 닮은 모녀(母女)가 떴다. 러닝머신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딸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하나도 안 힘들다”며 웃었다. 이에 어머니가 “힘들 만큼 운동을 안 해서 그래”라고 맞받아치자 중학생 소녀는 ‘찰싹’ 소리가 날 만큼 팔뚝을 때리며 응징했다. 시종일관 서로에게 곱게 눈을 흘기면서도 바늘과 실처럼 꼭 붙어 다니는 이들은 ‘제2의 신의현’을 꿈꾸는 장애인 노르딕스키 유망주 봉현채(15·세곡중)와 추순영(46) 여자골볼 대표팀 코치다.

봉현채는 교정시력 0.1로 시각장애 2급이지만 일반 학교에 다닌다. 이미 학교에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난해 장애인동계소년체전에서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시각부문 2관왕(5㎞ 프리·2.5㎞ 클래식)에 올랐고, 올해 3월에는 ‘피겨여왕’ 김연아와 함께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성화를 봉송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추 코치는 16살의 나이에 1988 서울하계패럴림픽 골볼 대표선수로 최연소 출전한 장애인 체육 ‘1세대’다. 그는 “운동을 해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는 육아 철학으로 밝은 성격의 딸을 길러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장애인 체육 인프라가 열악한 탓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딸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장애인이 체육 지도자를 구하기 어렵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체육시설 대관을 꺼리는 등 차별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장애인 체육의 근간인 ‘생활체육’의 현주소는 초라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가 10~69세 등록 장애인 5000명을 조사해 내놓은 2017년도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은 20.1%에 불과하다. 이는 같은 기간 비장애인 참여율(59.2%)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로, 장애인 5명 중 4명이 운동을 기피한다는 뜻이다. 이에 지난 3월 막을 내린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이 장애인 체육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환기시킨 만큼 이 기세를 몰아 생활체육 저변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장애인들… “코치가 필요해요”

대한장애인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장애인 생활체육 동호회 수는 2017개다. 하지만 대다수가 ‘1인 동호회’로 운영돼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기껏 동호회를 만들어 놓아도 좀처럼 사람이 모이지 않거나 금세 빠져나갈 만큼 구심점이 없다. 패럴림픽 스타인 장애인 아이스하키의 ‘빙판 메시’ 정승환(32), 휠체어컬링 주장 서순석(47) 등이 지역 동호회에서 운동을 시작해 내로라하는 선수로 발돋움한 점을 고려하면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처럼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제대로 된 지도자가 부족해서다. 한국은 2015년에야 뒤늦게 장애인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 제도가 신설됐는데, 3월 기준으로 자격증 취득자는 도합 1515명에 불과하다. 1급 자격증 제도는 2019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반면 비장애인 생활스포츠지도사 1·2급 자격증 취득자 수는 22만6738명에 달한다. 한국의 장애인 수가 약 2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인 5000만명의 5%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비례로 따져 봐도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봉현채(오른쪽)와 어머니 추순영 여자골볼 대표팀 코치가 30일 함께 러닝 훈련을 하고 있다.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 운동을 망설이는 경우도 많다.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이 운동할 때 전문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은 응답자가 전체의 46.5%에 달했다. 또한 생활체육을 할 때 전문 지도자가 짠 프로그램을 원하는 응답자도 63%로 매우 높았다. 뇌성마비 3급을 앓고 있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A씨는 “가뜩이나 몸이 불편한데 운동을 시키면 더 크게 다칠까봐 무서운 생각부터 든다. 마땅한 선생님도 없어 쉽게 아이를 맡길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정부는 이달 내에 장애인 체육의 중장기 발전계획(2018~2022년)을 세워 장애인 체육을 다방면에서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강원도청은 국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개최했다. 특위 내용은 △장애인 동계스포츠 인프라 구축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양성과 프로그램 확대 △아시아권 장애인 체육 국제대회 추진 등이 골자다.
◆보이지 않는 차별, 이제는 뿌리 뽑아야

장애인 아이스하키의 간판스타 정승환은 세계선수권 ‘최우수 공격수’를 3차례(2009·2012·2015년)나 수상한 레전드다. 평창패럴림픽에서도 활약하며 사상 첫 동메달까지 따냈다.

그런 그도 캐나다, 미국 등 강팀 선수들만 만나면 부럽기 짝이 없다. 정승환은 국내에 장애인 아이스하키 유소년 클럽이 없어 대학 시절에야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이에 비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해외 선수들을 보면 열등감마저 든다. 일례로 장애인 체육 강국인 미국은 2004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고안한 ‘I Can Do It, You Can Do It’이라는 장애인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미국 36개주의 100개 이상의 도시에 보급돼 약 40만명 이상의 유소년 생활체육인을 배출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 역시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비슷한 취지로 ‘통합 체육보급 교사연수 및 교실운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학생이 배치된 일반학교의 체육 교사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통합 팀을 구성해 함께 체육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통합체육’ 교수법을 가르친다.

그런데 매해 300~400명의 교사가 연수를 받지만, 학교 수업에 통합 체육을 도입하는 경우는 70개교 정도로 20%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가 통합 체육을 실시할 경우 160만원 남짓의 지원금까지 주지만 학부모의 반발과 더불어 학교 측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개선되지 않아 신청하는 학교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매해 통합 체육교실 우수사례 5개를 뽑아 해외 선진 통합교실을 견학시키는 등 인센티브가 많다. 그런데 장애인이 일반 학생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사회 도처에 만연해 있어 아쉽다”고 밝혔다.

장애인이 일반 체육시설을 대관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은 서울 8곳을 포함해 전국에 36곳뿐이다. 접근성이 마땅치 않아 거주지 인근의 체육시설에 가려 해도 장애인 핸드레일 등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고, 비장애인들이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탓에 집으로 돌아오기가 일쑤다.

이정학 경희대 체육대학 교수는 “평창패럴림픽으로 장애인 체육이 널리 알려졌지만 아직 국민들 의식수준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체육 지원도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국민들의 전반적인 정서에 대해 제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지속적으로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무럭무럭 자라는 꿈나무

이처럼 아직 장애인 체육의 갈 길은 멀지만 향후 미래를 짊어질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희망은 있다.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 아래 2022 베이징동계패럴림픽서 ‘금빛 질주’를 그리는 봉현채가 대표주자다. 유달리 수줍음 많은 꼬마였던 봉현채가 구김살 없는 소녀로 자라게 된 건 추 코치를 따라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다. 평창패럴림픽 노르딕스키 7경기 완주를 해낸 ‘철인’ 이도연(46)과 절친한 사이인 추 코치는 크로스컨트리 선수로도 뛰었는데, 봉현채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머니를 따라 눈밭을 끼고 놀았다. 추 코치는 “내가 워낙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학교 체육교사의 권유로 골볼을 시작했다. 우리 팀원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됐다. 딸에게도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크로스컨트리 나이제한(만 16세) 탓에 평창패럴림픽 출전이 불발된 봉현채는 “나 좀 일찍 낳아주지 그랬냐”며 추 코치에게 떼를 썼다. 이제는 마음을 다잡고 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금메달리스트인 신의현(38) 못지않은 선수가 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들 모녀는 아직도 운동을 망설이는 장애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추 코치는 “운동을 하려면 일단 집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장애인들이 부디 용기를 가지고 생활체육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옆에 선 딸은 “목표가 있으면 알아서 나오게 돼 있다. 당신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장애인 체육에 도전해 보시라”며 의젓한 ‘숙녀’티를 냈다.

글·사진=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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