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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일베’ 청원, 신중 대응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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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26 23:52:59 수정 : 2018-03-26 23: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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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게시판의 폐쇄 요구에 / ‘개입’ 해석 가능한 답 내놓아서야 / 정부가 여론광장 좌지우지하면 / 헌법가치 침해·형평성 논란 부른다 마크 저커버그. 개인정보 무단 유출 사태로 요즘 코너에 몰린 페이스북의 창업자다. 그는 2016년 죽다 살아났다. 병원에서가 아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다. 그해 11월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프로필에 ‘마크 저커버그를 기억하며’라는 추모 메시지가 떴던 것이다. 물론 저커버그는 당시 멀쩡했고, 지금도 멀쩡하다. 부고는 오보였다. 페이스북은 뒤늦게 “끔찍한 오류”를 사과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에겐 공통점이 있다. 엉터리 부고 피해를 봤다는 점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등도 살아생전에 자기 부고를 접했다. 노벨상을 남긴 알프레드 노벨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다만 2016년 부고 소동은 규모가 달랐다. 디지털 시대의 유별난 점일 것이다. 페이스북은 저커버그만 디지털 무덤에 생매장한 것이 아니다. 200만명의 사용자 프로필에 추모 메시지를 띄웠다.

페이스북은 구글, 트위터 등과 함께 디지털 소통과 뉴스 유통을 독과점하는 공룡이다. 국내에선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업체가 그렇고. 이 공룡들은 다 유용하지만 때론 대형 사고를 친다. 사고뭉치 공룡이다.

엉터리 부고는 약과다. 공룡 세계엔 훨씬 더 중차대한 문제가 있다. 가짜뉴스, 악성 댓글이다. 구조적 난제이자 만성 화근이다. 부고 오보는 판별이라도 쉽다. 생존 인물이 ‘짠’ 하고 나타나면 되니까. 가짜뉴스 등은 깔끔한 해결책이 없다. 사회적 비용이 부담스럽게 커져도 별무대책이란 뜻이다. 진영 논리까지 춤추면 최악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폐해가 크게 불거졌다.

해결책은 어디에 있나. 청와대는 아무래도 정부의 적극 개입 충동을 느끼는 모양이다.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 대한 언급에서 암시된다. 청와대 측은 청원 게시판에 오른 ‘일베 폐쇄’ 요구에 대해 23일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는지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답했다. “사이트 폐쇄 기준에 이르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자못 화끈한 발상이란 평가가 가능하다. 디지털 여론광장을 단칼에 자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아는 것일까.

현대 다원사회엔 극단적 주장을 쏟아내는 개인·집단이 널려 있다. 일베 일각도 그런 범주다. 정부 입맛에 맞을 까닭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 주도의 폐쇄 가능성을 논해도 될지 의문이다. 형평성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어서다. 사회 공분을 빚는 다른 극단의 창구들은 어쩔 것인가. 다 봉쇄할 수 있나. 특정 창구의 폐쇄 발상은 실행으로 옮겨져도, 혹은 중간에 좌절돼도 사회적 복통을 낳게 마련이다. 왜 지옥문을 여나. 더욱이 법에 저촉되는 디지털 언행은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 판국에….

자유민주주의 본질에 맞닿는 쟁점도 엄존한다. 정부의 좌지우지는 헌법적 가치와 충돌할 공산이 큰, 위험한 발상이란 측면이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의 14일 발언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신년 업무보고로 발표된 가짜뉴스 관련 대책을 중단하겠다면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규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정곡을 찌른 발언이다. 그래서 구미 사회도 조심스레 임하는 것이다. 우리라고 왜 다르겠나. 이 위원장 말마따나 신중을 기할 일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안전한 출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구글은 최근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가짜뉴스 유통과 악성 댓글을 막을 청사진이다. 언론과의 상생 전략도 담았다. 정부가 서둘러 할 일은 국내 공룡도 그런 방향으로 가게 권하고 적정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합리적 대안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여당 소속 신경민 의원의 20일 발언도 있지 않나. “포털의 뉴스 댓글 기능이 필수적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신중히 그리고 다각도로 여론광장의 자체 정화를 유도해야 한다.

순리냐 아니냐를 떠나, 디지털 혼란과 오염을 단박에 손보고 싶다는 충동이 분출한다면? 참아야 한다. 분노 발작은 난제 해결에 도움이 못 된다. 차라리 자기 부고에 위트로 대처한 마크 트웨인을 본받는 것이 백번 낫다. 그는 말했다. “내 부고는 대단히 과장된 것”이라고. 일국의 정부가 일개인보다 못난 반응을 보인다면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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