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는 근대국가와 국가철학의 성립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자유·자본주의와 시민의식)와 산업화를 주도한 서구 선진국들은 저마다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데카르트의 프랑스와 칸트의 독일과 데이비드 흄의 영국이 이런 나라들이다. 알다시피 이들은 합리주의와 관념론과 경험론 철학을 만든 나라이다. 이들은 숫제 철학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자기들뿐이라고 주장한다.
후기근대에 들어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는 니체와 마르크스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들은 인류에게 파시즘(혹은 전체주의)을 선물한 철학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니체의 ‘권력의 의지’(주인철학)와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노예철학)은 말은 다르지만 둘 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집념과 욕망을 드러낸다. 각각 우파·좌파 파시즘 탄생의 철학적 요인을 제공한 두 철학자가 다시 살아나서 제1, 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오늘의 패권경쟁을 보았다면 기겁했을지도 모른다. 마르크스는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마르크시스트가 아니라고 죽기 전에 선언했지만 말이다.
근대철학사에서 가장 아이로니컬한 일은 마르크시즘이 독일 태생의 마르크스에 의해 영국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시즘은 초기자본주의의 모순이 발생한 유럽의 산업국가가 아니라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농업빈곤(노예)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에서 성공했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국민의 과반수가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공산사회주의가 성공했다는 점은 민도가 낮은 농업국가에서 성공 확률이 높음을 의미한다. 공산주의는 국가 위에 공산당이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주의가 되기 쉽다. 오늘의 중국, 러시아, 북한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철학 지형도는 어떤가. 조선조 성리학의 사대주의는 결국 나라를 일제에 넘겨주었고, 일제는 곡창지역인 전라도 일대를 수탈 대상으로 삼았다. 근대를 식민지에서 시작한 우리 민족은 국가를 잃어버렸으니까, 근대국가 철학은 고사하고 민족주의와 민족사학(대륙사학)을 붙들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독일관념론의 완성자이며 철학의 종합 메뉴라고 일컬어지는 헤겔의 역사철학은 철학을 역사와 융합했고, 결국 철학은 국가철학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나라를 잃은 한민족이 생산한 역사철학으로 ‘단재(丹齋)사학’을 들 수 있다. 나라를 잃고 만주 일대를 유랑하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아(我)와 피아(彼我)’의 사관이었고, 이것이 독립운동의 사상적 중추가 됐음은 물론이다. 단재 신채호(申采浩)의 대륙사관은 한민족의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심어주었지만 동시에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인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에 의한 통일로 통박함으로써 한민족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자기모순을 노정했다.
단재사학은 고구려 고토 상실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한 삼국통일을 부정함으로써 그것 자체가 한민족 집단의 식민지적 의식분열상을 반영했다. 민족주의는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을 때 힘이 된다. 한민족이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단군사상이 부활하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민족주의는 한 국가가 집단적 정체성의 재확립을 필요로 할 때 유효하지만, 그것이 철학은 아니다.
우리 민족은 왜 잘 먹고 잘살 때는 단군사상을 외면하다가 못살고 국난의 위기에 직면할 때만 단군을 떠올리는 것인가. 세계적으로 볼 때 아랍 민족주의도 중세에 사라센제국을 운영한 아랍 민족이 근대에서 낙오하면서 생겨났다. 아랍은 현재 분열상을 보이면서 세계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6·25전쟁을 치른 한민족이 다시 아랍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의 민족대륙사관은 식민사학을 물리치는 데는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민중사학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고구려정통론을 견지하고 있는 북한은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의 가짜신화, 가짜철학에 둘러싸여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7000달러가 넘은 산업국가인 대한민국이 1000달러를 겨우 넘은 북한에 종북사대하는 것은 근대사 최대의 아이러니이다. 이는 바로 철학 없는 남한의 사대주의 체질 때문이다. 남북한을 통틀어 한민족은 ‘근대국가 만들기’에 실패하고 있다. 지금 구한말 100년 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신화가 역사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신화가 돼야 한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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