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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국립공원에 터전 잡은 마을문화 지켜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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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25 21:33:01 수정 : 2018-03-25 21: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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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대모로 25년… 윤주옥 ‘국시모’ 대표 “국립공원에 사는 동식물만 보존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그곳에는 사람도 살죠. 자꾸 사라져가는 국립공원 주민과 그분들의 문화도 함께 지켜야 해요.”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대표는 뜻밖에도 ‘사람’을 이야기했다. 불현듯 산에 마음을 뺏겨 국립공원 활동가로 보낸 지 올해로 25년. 10년 전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겼을 만큼 산 사랑이 깊은 그다.

그런데 지난 8일 서울역 인근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그는 구상나무나 반달가슴곰에 앞서 사람을 화두에 올렸다.

“생태계는 인간이 훼손하지 않으면 망가지지 않아요. 그런데 국립공원에 사는 어르신들은 계속 줄어들잖아요. 지리산에 대한 기억, 지리산의 마을문화도 함께 사라진다는 게 너무 마음 아팠어요.”

고령화의 그늘은 지리산 자락에도 내려앉았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났고, 연로한 주민들은 세상을 떠났다. 윤 대표는 2014년부터 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여순사건, 6·25전쟁 같은 역사적 질곡과 국립공원지정(1967년) 등을 거칠 때마다 요동친 주민의 삶부터 마을을 지나는 군내버스 노선, 주민화합잔치 같은 소소한 기억까지 빠짐없이 기록했다.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대표가 지난 8일 지리산 마을보고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구례 황전마을과 남원 덕동마을, 함양 두지동마을, 산청 유평마을, 하동 의신마을 5곳의 이야기를 모아 지난해 말 마을보고서와 스토리텔링북으로 펴냈다.

“외부에서 국립공원 주민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은 편이죠. 개발에만 관심있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비치곤 하니까요. 하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내 땅인데 내 맘대로 할 수도 없고, 본인들의 삶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 거예요.”

현재 지리산에는 8개 마을이, 전체 국립공원에는 총 135곳이 마을지구로 지정돼 있다. 2000년대 676곳에 비해 5분의 1로 줄었다. 국립공원 문제를 정책이 아닌 민원 위주로 푼 결과다.

“국립공원은 10년마다 구역을 조정(공원구역타당성 조사)해요. 그런데 2010년도에 재조정하면서 마을주민의 민원이 많은 곳은 죄다 풀어준 거예요. 국립공원 여기저기에 뽕뽕 구멍이 뚫리게 됐죠.”

문제는 국립공원에서 해제된 마을도 새로운 불편을 겪게 됐다는 점이다.

“가령 쓰레기처리 문제가 생겼을 때 지자체가 해결해줘야 하는데 고작 몇십명 사는 마을을 위해 누가 적극 나서겠어요. 이젠 국립공원도 아니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나설 일도 아니고요. 사실 국립공원 마을 주민의 불편은 자연공원법을 마을지구에 한해 완화하거나 행정을 효율화하는 방식으로 풀었어야 하는데 제일 손쉬운 방법을 찾다 보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죠.”

그는 국립공원이 건강해지기 위해선 마을을 유지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공원 주민을 안 좋게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오래 지내다 보니 주민만큼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인터뷰 말미에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 ‘지리산에 늘 고맙다’는 거예요. 지리산이 여태 자신들을 먹여주고 살려줬으니까요.”

윤 대표는 다음달 14∼15일 ‘제1회 곰깸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지리산의 상징이 된 반달가슴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이 또한 마을과 자연의 공존을 고민하다 기획하게 됐다.

“주민들은 곰이 깨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산나물도 캐고, 버섯도 채취해야 하는데 곰이 있으면 불편하고 거북스러우니까요. 곰깸축제는 곰의 영역을 존중하고, 주민 스스로 조심하자는 취지예요. 의신마을분들이 이런 취지에 공감하셔서 이번에 처음으로 진행하게 됐어요.”

윤 대표가 처음부터 환경에 남다른 감수성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이야 국립공원을 지키는 ‘대모’가 됐지만 원래는 노동운동에 먼저 발을 담갔다. 하지만 결혼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자연스레 활동에서 멀어졌다. 요즘말로 ‘경력단절여성’이 될 뻔한 그는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에 환경 문제에 눈을 떴다.

“노동운동을 할 때는 사람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라, 나무도 있고 동물도 있었네.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이력을 듣고 나니 주민의 생존권과 사라져가는 마을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사람에서 자연으로, 그리고 이제는 사람과 자연을 아우르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이리라.

“국립공원을 보존하려면 지역 주민이 반드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해요. 올해는 2020년부터 적용될 공원구역타당성 조사의 기준을 세우는 해입니다. 이 부분이 꼭 반영되길 바랍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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