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빠! 그러세요.”
부산 북구에 사는 50대 중반의 아버지 A(중견기업 간부) 씨와 올해 부산 모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16)이 지난달 초순에 나눈 대화다.
골프광인 아버지가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영어, 수학 등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외동딸의 사교육을 중단하자고 제안하자 딸이 흔쾌히 동의한 대화의 한 토막이다.
언뜻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보이는 우리 나라 풍토를 생각한다면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옆에 있던 50대 후반의 모 회사 간부는 믿기지 않는 듯 “진짜 그런 대화를 했느냐? 우리 나라 학부모 100명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고교생 딸의 학원비를 싹둑 자를 수 있다는 말이냐”며 “그것도 골프를 하겠다는 데 딸이 동의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말을 받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을 시키는 게 우리 나라 풍토인 데 골프하고 싶다고 딸 학원을 끊으라고 하다니.. 어디 가서 말하면 욕얻어 먹겠다”고 거들었다.
A씨가 지난달 고 1학년 외동딸의 학원비를 모두 끊고 인터넷 강의 1강좌를 들을 수 있는 티켓을 끊어준 한 인강 매체 홈페이지. |
A씨는 “내가 알고 있는 60∼70대 지인 중 재산이 한 30억 정도 되는 사람이 몇 명 있는데 대부분 자식들이 ‘부모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며 “이건 결국 어렸을 때부터 부모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교육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고, 가끔은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A씨는 이어 “내가 알고 있는 형님 중 재산이 100억원 이상되는 분이 계시는 데 이분은 자녀에게 용돈도 함부로 안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자녀가 청소년 때부터 대학까지 교육은 시켜주지만 재산은 물려주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 지금은 자식들이 부모가 재산을 어디 기부를 하던 말던 아무런 관심도 갖지않는다는 데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A씨의 결정이 사교육 왕국인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호응을 얻을 지는 미지수다.
A씨가 선택한 골프라는 운동 종목도 아직은 대중화한 종목이라고 보기에 이른 감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A씨의 용기있는 선택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수많은 학부모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A씨의 솔직한 제안에다 고1 딸의 쿨한 동의, 이 딸이 성장해 대한민국과 지구촌에 어떤 족적을 남길 지 주목된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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