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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하늘·땅·인간 연결하는 생명의 에너지

입력 : 2018-03-22 20:45:29 수정 : 2018-03-22 20: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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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 ‘나무의 수사학’ 출간
‘한국문학의 상상력 속에서 싹트고 잎 돋고 꽃피고 아름드리로 자라나는 나무의 풍경’을 살펴본 노작이 출간됐다. 평론가 우찬제(서강대 국문과 교수·사진)가 5년여에 걸쳐 집필한 ‘나무의 수사학’(문학과지성사)이 그것이다. 우찬제는 나무의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생명, 욕망, 상처, 치유를 대입시켜 한국문학의 시 소설은 물론 외국 저작물의 명구들까지 포괄해 집중적인 사유를 펼쳤다.

“나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하고/ 슬픈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따라 바람이 불고 가는/ 소란한 마을 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나무는 제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년의 강물이다.”(이형기, ‘나무’)

빈센트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
나무는 한자리에 서서 자라다 생명을 마감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기실 이형기 시인의 눈에는 ‘선 채로 흘러가는 천년의 강물’이다. 정현종의 시편들에서는 나무들은 흙 바람 물 불, 이런 기본적인 원소들을 매개하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소통하게 하는 중요한 우주목(宇宙木)이다. 정현종은 “나무들은/ 난 대로가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든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나무에 깃들여’)이라고 썼다.

“세상의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지?/ 그걸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 허구한 날 봐도 나날이 좋아/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그런 사람 땅에 뿌리내려 마지않게 하고/ 몸에 온몸에 수액 오르게 하고/ 하늘로 높은 데로 오르게 하고/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 하늘에도 땅에도 우리들 가슴에도/ 들리지 나무들아 날이면 날마다/ 첫사랑 두근두근 팽창하는 기운을!”(정현종, ‘세상의 나무들’)

우찬제는 “정현종의 나무는 생명의 에너지로 충일해 있다”면서 “그 우주의 나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기운을 연결하며 생명의 환희로 모든 것을 춤추게 한다”고 본다. 나아가 “상승과 확산 운동을 통해 세상의 가슴을 첫사랑의 가슴처럼 만들어 황홀경의 수사학을 보여준다”고 썼다.

“저녁 몸속에/ 새파란 별이 뜬다/ 회음부에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김지하, ‘줄탁?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안에서 깨고 밖에서 어미닭이 쪼아 주는 ‘줄탁’의 의미를 형상화한 김지하의 시는 정현종의 방식과는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나는 명편이라는 시각이다. 이 시도 정현종처럼 땅과 하늘의 기운을 연결하는 우주목의 형상이면서 특히 죽음에서 부활을 길어 올리는 생명사상이 돋보이는데, 특히 “‘육체-불-재-나무-달-육체’의 유기적 순환 원리를 중시한 이 대목(2연)이야말로 생명의 영원함과 그 영원한 생명력이 인간의 몸 안에 스며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시뿐만 아니라 황순원 이청준 김영하 한강 등의 소설에 나타난 나무는 물론, 김선두 화백의 그림 속 나무들까지 상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충북 충주 출생인 우찬제는 천등산 아래 산골마을에서 자라면서 유난히 나무와 친밀한 유년기를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산에 올라가 나무 위에서 잠도 자고 큰 나무줄기에 매단 그네 위에서 몽상을 했다.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본 ‘길 위의 사이프러스와 별들’이라는 그림에서도 사이프러스라는 나무와 그 나무에게서 큰 위안을 받았다는 고흐의 사연에 깊이 감응했다. 고흐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미술운동을 하다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큰 상처를 입었을 때 시골로 가서 사이프러스에게서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벤쿠버 여행에서는 죽은 나무 위에 떨어져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간호사 나무’(nurse-tree)가 그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는 “한 나무가 자라 땅과 하늘을 연결하다가 인간의 톱에 베어졌고, 또 많은 시간이 지나 그 밑동이 적당히 썩어갈 무렵 솔 씨 하나가 그 밑동 위로 떨어져 생명의 기운을 지피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죽은 나무 위에서 자라나 새 나무의 푸른 기상은 확실히 생명의 멋진 찬가였다”고 돌아보았다. ‘죽어서도 새 생명을 키우는 나무’를 본격적으로 붙들고 문학을 조명하려고 마음먹은 배경들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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