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하고/ 슬픈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따라 바람이 불고 가는/ 소란한 마을 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나무는 제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년의 강물이다.”(이형기, ‘나무’)
빈센트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 |
“세상의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지?/ 그걸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 허구한 날 봐도 나날이 좋아/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그런 사람 땅에 뿌리내려 마지않게 하고/ 몸에 온몸에 수액 오르게 하고/ 하늘로 높은 데로 오르게 하고/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 하늘에도 땅에도 우리들 가슴에도/ 들리지 나무들아 날이면 날마다/ 첫사랑 두근두근 팽창하는 기운을!”(정현종, ‘세상의 나무들’)
“저녁 몸속에/ 새파란 별이 뜬다/ 회음부에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김지하, ‘줄탁?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안에서 깨고 밖에서 어미닭이 쪼아 주는 ‘줄탁’의 의미를 형상화한 김지하의 시는 정현종의 방식과는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나는 명편이라는 시각이다. 이 시도 정현종처럼 땅과 하늘의 기운을 연결하는 우주목의 형상이면서 특히 죽음에서 부활을 길어 올리는 생명사상이 돋보이는데, 특히 “‘육체-불-재-나무-달-육체’의 유기적 순환 원리를 중시한 이 대목(2연)이야말로 생명의 영원함과 그 영원한 생명력이 인간의 몸 안에 스며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시뿐만 아니라 황순원 이청준 김영하 한강 등의 소설에 나타난 나무는 물론, 김선두 화백의 그림 속 나무들까지 상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충북 충주 출생인 우찬제는 천등산 아래 산골마을에서 자라면서 유난히 나무와 친밀한 유년기를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산에 올라가 나무 위에서 잠도 자고 큰 나무줄기에 매단 그네 위에서 몽상을 했다.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본 ‘길 위의 사이프러스와 별들’이라는 그림에서도 사이프러스라는 나무와 그 나무에게서 큰 위안을 받았다는 고흐의 사연에 깊이 감응했다. 고흐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미술운동을 하다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큰 상처를 입었을 때 시골로 가서 사이프러스에게서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벤쿠버 여행에서는 죽은 나무 위에 떨어져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간호사 나무’(nurse-tree)가 그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는 “한 나무가 자라 땅과 하늘을 연결하다가 인간의 톱에 베어졌고, 또 많은 시간이 지나 그 밑동이 적당히 썩어갈 무렵 솔 씨 하나가 그 밑동 위로 떨어져 생명의 기운을 지피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죽은 나무 위에서 자라나 새 나무의 푸른 기상은 확실히 생명의 멋진 찬가였다”고 돌아보았다. ‘죽어서도 새 생명을 키우는 나무’를 본격적으로 붙들고 문학을 조명하려고 마음먹은 배경들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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