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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시진핑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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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9 23:52:26 수정 : 2018-03-19 23: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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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절대권력이 서면 / 쑥밭으로 변한 한반도의 역사 / 모순 위에 선 시진핑 권력 / ‘패권주의 위기’ 대비해야 ‘시황제’가 탄생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습(習)의 중국 발음은 ‘시’다. 진시황제의 시(始) 발음도 ‘시’다. 병음 표기는 xi와 shi로 다르다. 하지만 지역과 사람에 따라 발음도 제각각이니 도긴개긴이다. 발음만 닮았을까. 실제도 비슷하다. 국가주석 3연임 제한을 없애고 “종신 주석의 길을 닦았다”고 한다. 오방(五方)의 검은색을 숭상한 진. ‘검은 군사’를 거느린 진시황제는 사구의 수레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시 주석은 언제쯤 권좌에서 내려올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차르’를 꿈꾼다. 대통령 연임 제한을 없앤 뒤 네 번째 대통령에 당선됐다.

시진핑과 푸틴. 누가 더 무소불위 황제에 가까울까. 러시아에서는 투표라도 한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직접선거 자체가 없다. 하지만 시 주석은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 국가주석으로서 행정권을, 총서기로서 당권을, 중앙군사위 주석으로서 군권을 거머쥐고 있다. ‘시진핑 사상’(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을 헌법에 명기했다. 중국 현대사를 바꾼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올라선 걸까. 인민대표 2970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주석에 재선이 결정된 뒤 인민일보는 이런 사설 제목을 달았다. “국가의 조타수 인민의 영로인(領路人)”. 영로인은 영도자라는 뜻이다. 영수(領袖)라는 말도 도배질하다시피 한다. ‘조타수’와 ‘영수’는 문화혁명 때 쓴 마오쩌둥 숭배 용어로, 개혁개방 이후에는 금기시됐다. “2300년 전 시황제가 되살아났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뭇 중국인은 어찌 생각할까. 찬성표를 던진 인민대표들과 같은 생각일까. 아닌 것 같다. 생각이 똑같다면 왜 중국 인터넷에서 곰돌이 푸(維尼熊)·위안스카이(袁世凱)·황제·만세·독재와 같은 용어 검색을 차단하겠는가. 홍콩·화교 언론에서는 비판이 쏟아진다.

‘시진핑 리스크’가 한지를 시커멓게 물들이는 먹처럼 번지니 초초히 중국을 지켜보게 된다.

영국의 사학자 존 에머릭 액턴,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그 말의 다른 뜻은 무엇일까. ‘절대권력은 절대 망한다’는 것이다. 왜? 부패는 패망을 낳는 씨앗이니 그렇다. 부패한 권력이 흥한 역사는 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부패가 멀리 있지 않다면 내부 모순에 멍든 권력은 반드시 모순을 외부로 돌린다. 권력 누수를 막는 메커니즘이 그렇다. 중국 역사는 특히 그랬다.

진(秦)에 이어 등장한 한(漢). 고조 유방은 힘이 모자랐다. 화폐 주조권조차 갖지 못했다. 어떤 행동을 했을까. 흉노에 혼쭐이 난 뒤 평화를 외쳤다. 60여년 뒤 등장한 한무제. 강력한 중앙집권권력을 구축했다.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주변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진시황제 때와 똑같다. 조선(위만조선)은 그때 망했다. 기원전 108년 조선의 왕검성은 피로 물들었다. 중국은 그것을 ‘정벌’이라고 한다. 그때 벌어진 일을 두고 우리는 지금 고대 강역 논쟁을 벌인다. 고구려를 침략한 수 문제와 양제, 당 태종 시기. 모두 중원에 절대권력이 들어선 때다. 고구려와 백제는 처절한 싸움 끝에 결국 망했다. 한족 왕조는 아니지만 고려를 쑥밭으로 만든 몽골 침입도 원(元)의 절대권력이 중국을 장악한 뒤 벌어진 일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옛날에만 그랬을까. 6·25전쟁 때의 구조도 비슷하다. ‘항미원조’를 내걸고 한반도 전쟁에 뛰어든 중국에는 마오쩌둥의 절대권력이 들어서 있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벌어진 ‘광란의 문화혁명’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사달 메커니즘’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 같다. 사드 배치를 두고 얼토당토않은 무역보복에 나선 중국. 그것은 ‘큰 사달’을 예고하는 신호가 아닐까. 1980년대 덩샤오핑, 1990년대 장쩌민 시대라면 생각하기 힘든 오만이 꿈틀댄다. 지금의 중국인은 1960∼70년대의 중국인이 아니다. 서구의 ‘자유’를 속속들이 안다. 직접선거조차 없는 중국의 모순은 언젠가 터진다. 모순이 크면 클수록 사달의 강도는 강할 수 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허튼 생각’을 한다면 화는 반드시 닥치지 않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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