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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진의 밀리터리S] 훈련병은 알고 지휘관은 모르는 '논산훈련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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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9 16:01:41 수정 : 2018-03-20 1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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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냉수샤워·부실배식 없다" 해명 불구 / 훈련병 "배고픔에 감기 달고 훈련" 분통 / 소원수리 내면 "누가 썼나" 색출 진풍경 / 잇단 비판에 軍 "노후시설 신속 개선" 약속


“(논산) 육군훈련소는 연간 약 12만여명의 훈련병을 정예병사로 육성하는 산실로서 육군은 국민의 소중한 자제를 제대로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훈련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육군훈련소 훈련병의 경우 1일 3440㎉ 열량으로 단백질 145g을 포함한 균형된 식단을 제공 중이며, (세계일보에) 보도된 어묵 3점에 김치, 무생채, 고춧가루 국은 군에서 존재하지 않은 식단 편성이다.”

“훈련병에 대해 일과 이후 200평 규모의 목욕탕을 이용하여 매일 온수샤워를 지원하고 있으며, 화장지는 재생용지가 아닌 천연펄프 소재의 화장지를 2013년부터 보급하고 있다. 또한 훈련기간에 발생하기 쉬운 감기, 폐렴 등 질병 예방을 위해서는 온도지수와 훈련병의 건강상태, 체력을 고려하여 융통성있게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은 지난 17일 본지의 “배곯고 병 걸리는 논산훈련소” 제하의 보도와 관련한 육군의 해명이다.

하지만 이런 육군의 입장은 부실한 훈련병 관리시스템과 시설 노후화에 따른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투적 답변이다. 기사 보도이후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논산훈련소가 정말 그러냐”고 하면서 배곯는 훈련병과 한겨울 냉수 샤워의 사실 여부를 캐물었다. 훈련병 전체가 그런 처우를 받는 지도 관심사였다. 논산훈련소보다 더 열악한 전방의 노후 사단 신병훈련소 상황도 다뤄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허기에 시달리는 훈련병은 주로 배식(配食) 과정에서 발생한다. 훈련병 배식을 담당하는 이들이 훈련소 인원이 아닌 훈련병인 탓이다. 갓 입대한 훈련병들이 짧은 시간에 수백명의 식사량을 적절히 배분하기는 쉽지 않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퍼주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개중에는 배식을 맡은 훈련병이 자기가 속한 부대원에게 정량 이상의 음식을 나눠주는 일도 발생한다. 뒷줄에 서거나 배식 담당과 안면이 없는 훈련병 식단은 부실해지기 십상이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훈련병들 가운데 일부는 쵸코파이 1개를 얻기 위해 종교시설을 찾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산훈련소에 근무했던 군 관계자는 “식사 배식을 훈련병에게 맡기다보니 식당에 먼저 온 훈련병은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반찬 등 음식이 남는데 뒤에 줄을 선 훈련병은 찬밥신세가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면서 “차선책으로 배식 과정에 식사량을 균등하게 배분하도록 조교나 지휘관이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일이지만 알고도 방치해온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훈련병에게 매일 온수샤워를 지원하고 있다는 항변도 거짓이다. 논산훈련소의 겨울철 냉수 샤워는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도 유명하지만 훈련소의 개선 의지는 미약하다. 최근 훈련소를 퇴소한 한 병사는 “샤워를 하면 통증으로 머리가 깨질 듯한 찬물이 쏟아졌고, 이런 샤워는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반복됐다”고 부모에게 털어놨다. 현재 논산훈련소 15개 구막사(생활관)에 설치된 샤워 시설중 일부는 훈련병 수백명이 한꺼번에 이용하기에 보일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기 등 질병에 걸린 환자 체크도 훈련병 몫이다. 훈련소 질병 예방 관리가 제대로 될리 없다. 논산훈련소에서 이 일을 담당했던 한 훈련병은 “만연한 감기 환자 체크와 처방의뢰 등으로 일과가 끝난 휴식시간에도 채 3분을 쉬지 못할 정도였다”면서 “그러다보니 맡은 일을 대충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훈련이 끝나갈 무렵 행해지는 감찰반의 훈련병 소원수리(訴願受理) 과정도 수박 겉핥기식이다. 조교 등 부대 관계자들을 생활관 밖으로 내보낸 뒤 훈련병들에게 훈련소에서 겪은 부조리한 일들과 개선사항을 익명으로 적어내도록 하지만 잠시 뒤 훈련병들의 쪽지를 들고 나타난 조교들이 ‘누가 이런 글을 썼느냐’며 색출작업을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 일쑤다.

한 예비역 장교는 “지휘관들이 한번이라도 겨울철에 기침소리 가득한 침상형 생활관에서 훈련병들과 부대끼며 ‘칼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는다면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육군은 “논산훈련소가 20년 이상 노후된 시설로 국방시설기준의 1인당 생활면적 대비 매우 비좁은게 사실”이라면서 “기사에서 제기된 훈련소 시설 및 훈련병 생활여건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면밀히 확인해 미진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신속히 개선해 나가겠다”고 19일 밝혔다.

배곯는 훈련병과 한겨울 냉수 샤워를 하는 훈련병, 훈련기간 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병사들이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 훈련소에서 먹고 자는 문제로 더는 가슴 졸이며, 울분을 터트리지 않았으면 한다. ‘송영무호’의 국방개혁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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