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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겨진 일그러진 사회… 무감해진 우리들의 자화상

입력 : 2018-03-16 03:00:00 수정 : 2018-03-15 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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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 소설집 ‘소년7의 고백’
“모르겠어요. 이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날, 거기 있었던 게 맞나요? …미주 누나를 우리가… 형사님, 딱 한 번만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이제 조서도 다 썼고 카메라도 껐잖아요.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우리가 정말, 구제불능의, 파렴치한 성폭행범이 맞는 건가요?”

박성재,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할머니와 둘이 사는 이 소년이 경찰서 취조실에 갇혀 형사에게 쏟아내는 외침이다. 안보윤(사진) 두 번째 소설집 ‘소년7의 고백’(문학동네)의 표제작 서두인데 이 단편에서 소년은 성폭행이 무엇인지, 그것이 진짜 범죄인지 채 의식하지 못한다. 이 소년은 정신 장애가 있는 ‘미주 누나’의 가슴을 또래들과 함께 ‘장난’으로 만졌다. 그 아이는 형사에게 항변한다. “제가 한 게 성폭행이에요? 누나 가슴 만진 게요? 저 진짜, 진짜 잠깐, 아니 막 엄청 그런 것도 아니고 장난이었는데… 아, 어떻게… 그럼 전 어떻게 해요, 감옥 가서 평생… 할머니가 그런 놈들은 인간쓰레기라고 그랬는데… 전 몰랐어요. 진짜 몰랐어요. 궁금해서, 할머니 가슴이랑 뭐가 다른지 궁금해서, 커다랗고 푹신푹신해 보이니까 기분 좋을 것 같아서 그랬던 거뿐이에요. 형들도 가끔 그러니까 해도 되는 건 줄 알았어요.”

청소년의 이 대사만으로도 한국 사회에 원초적으로 미만한 일그러진 성과 젠더의식을 잘 드러내거니와, 소년이 미주의 가슴을 만졌을 때 그녀가 했다는 말은 ‘미투 혁명’이 진행되는 작금 한국 사회의 현실을 통렬하게 드러낸다. “누나가 너는 김사장 아저씨랑 똑같은 놈이라고, 고물상 할아버지랑 박 뭔가, 뭐 그런 사람들 줄줄이 대면서 그 사람들이랑 똑 같다고 욕했어요.” 이 단편은 단순히 현실을 드러내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형사가 아이에게 없는 일을 그럴듯하게 강요해 범죄를 조작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일그러진 현실에 대응하는 일그러진 방식이다. 형사에게 ‘엮인’ 소년은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떳떳할 수도 없다.

‘세계의 그늘에 가려진 사회적 약자와 일상화된 불의에 무감해진 현대인의 삶을 예민하고 집요하게 포착해온 작가’라는 평을 듣는,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안보윤의 이번 소설집에는 이밖에도 ‘포스트잇’ ‘불행한 사람들’ ‘일그러진 남자’ ‘여진’ ‘이형의 계절’ ‘때로는 아무것도’ ‘순환의 법칙’ ‘어느 연극배우의 고백’ 등 모두 9편이 실렸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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