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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봄 마중을 하러 나가지 않아도 된다.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학교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봄꽃 같은 신입생투성이다. 수줍은 듯, 두려운 듯,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이다.

사람들이 불빛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마음이 무슨 바닥 없는 막대한 어둠이었는데 캠퍼스 새내기를 보니 가슴이 살짝 두근거린다.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별처럼 오므라져 있던 내 몸을 우지직 펴본다. 청춘들의 봄이 돌아온 것이다.

신입생의 오리엔테이션, 환영회의 뒤풀이는 언제나 치맥이다. 바삭하게 잘 튀겨진 치킨과 황금빛 가득한 맥주. 노릇노릇하게 잘 튀겨진 치킨을 호호 불며 씹을 때쯤 우리는 알게 된다. 저마다의 영혼에 하나씩의 요리가 있다는 것을. 한국인 영혼의 고향은 바로 ‘치킨’이라는 것을.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이 1년에 먹어치우는 닭은 전 세계에 있는 닭의 상당량에 달할 것이다. 평창올림픽의 진정한 승자는 ‘치킨’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까.

뮤비 동영상 ‘판타스틱 치킨’은 그룹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를 패러디한 곡이다. “치킨을 시켜라! 쿠폰을 모아라! 이젠 치킨타임!/벨이 울린다! 치킨이 왔다! 다린 내꺼다!/뱃살은 걱정 말고 그냥 먹어 소, 손 가는 대로/(……)/아이원어 닭닭닭닭, 판타스틱 치킨~닭.”

한국사람이 언제부터 닭을 튀겨 먹었을까. 영화 ‘집으로’에서는 도시에서 온 어린 손자가 벙어리인 시골 할머니에게 닭이 먹고 싶다고 한다. 한국 전통에서 유일하게 영양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 계란과 닭이다. 할머니는 손자의 말을 알아듣고는 당장 마당의 닭을 삶아 손자의 밥상 위에 올려놓는다.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더 이상의 계란을 포기한다. 그러나 손자는 신경질을 부리며 큰소리로 울며 소리친다. “왜 닭을 물에 빠뜨려 놨어?” 투정 많은 손자는 닭튀김을 원했던 것이다. 닭을 삶아 먹지 않고, 고아 먹지 않고, 튀겨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닭’은 ‘치킨’이 됐다. 시골 마당의 닭이 서양식 도시의 닭으로 바뀌었다. 어른의 통닭이 청춘의 치킨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치킨은 청춘의 맛이다. 바삭바삭, 쫀득쫀득, 기름진 도시 쾌락의 맛이다. 판타스틱 베이비는 외친다. 야식 판의 끝판왕, 칼로리 과열, 뱃살의 주범, 하지만 치킨은 너무 맛있어라고. 순살치킨, 간장치킨, 카레치킨, 파닭치킨, 갈릭치킨, 로제치킨 등 치킨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역시 치킨은 프라이 반, 양념 반이다. 그 고소한 맛과 달짝지근 매콤한 맛이 곧 청춘의 이성과 열정의 맛 같다. 이성의 맛과 열정의 맛. 판타스틱 치킨은 청춘의 영혼을 부추겨 이성을 열정의 높이까지 훨훨 날아오르게 할 듯하다. 오, 판타스틱 베이비, 판타스틱 치킨!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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