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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아일랜드 사람들은 뜸부기 수명으로 시간 길이를 쟀다고 한다. 적어도 1942년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양복장이와 앤스티’라는 책에 따르면 그렇다. 이런 식이다. “개는 세 뜸부기보다 오래 살고, 말은 세 개보다 오래 살고….” 앞토막을 풀이하면 이렇다. “개의 수명은 뜸부기의 세 배 이상 길다.”

현대 사회는 그렇게 시간을 재지 않는다. 뜸부기 계산법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시간을 재다가는 일상생활을 꾸려갈 방도가 없다. 이 세상은 10진법 체계로 돌아간다. 0을 발견하고 활용한 옛 인도 문화, 혹은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전한 이탈리아 상인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의 공이 크다.

10진법으로 표기가 어려울 만큼 숫자가 커지면 어떡하나. 걱정할 것 없다. 단위 접두어가 있으니까. 컴퓨터 디스크 용량이 1테라바이트(TB)라면 10의 12승이란 뜻이다. 테라는 약과다. 컴퓨터의 2진법 세상에는 페타(10의 15승), 엑사(18승), 제타(21승), 요타(24승) 등 현기증 나는 접두어가 범람한다. 왜 이런가. 정보량이 폭주해서다. 미국의 인터넷 사용량 변화에서 가감없이 확인된다. 요즘 1시간당 사용량은 2000년의 연간 사용량을 훌쩍 넘어선다. 세계 디지털 정보량은 2011년 1.8제타바이트였다. 2020년엔 50배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자동차 번호판이 또 바뀐다고 한다. 2006년 이후 12년 만의 대대적인 손질이다. 현행 ‘2자리 숫자+한글+4자리 숫자’ 체계로는 신규 수요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돼서다.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현행에 숫자 한 자리를 추가한 ‘222가3333’ 형태 혹은 한글 받침을 더한 ‘22각3333’ 형태가 유력시된다. 아찔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서정적 삽화라고나 할까.

자동차 번호판이 언제까지 ‘확장’ 방향으로 바뀔까.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엔 반영구적으로 잘 바꾸겠다고 당국이 호언장담해서가 아니다. 인구통계학이 그렇게 말해준다. 기존 자동차의 위상을 위협하는 자율주행차 등의 도전도 만만찮고…. 기존 자동차도, 번호판도 멸종 위기의 뜸부기 신세가 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이번 개편은 마지막 불꽃일 테고….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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