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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강렬한 색에 스민 휴머니티… 아프리카의 魂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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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2 20:47:15 수정 : 2018-03-12 20: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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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故 조지 릴랑가 외손자 / 외조부 뜻 따라 붓 잡은 지 25년 / 단순한 선, 선명한 색에 익살 가득 / 미술 거장 ‘팅가팅가’의 화풍 이어 인사동의 신생 대형 전시공간인 ‘인사1길 컬쳐스페이스’에서 내달 1일까지 ‘아프리카 미술여행전’이 열린다. 아프리카 현대미술작가 4명이 초대된 전시다. 탄자니아 작가 헨드릭 릴랑가(Hendrick Lilanga·44)도 그중에 한 사람으로 서울에 왔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서구 미술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조지 릴랑가(George Lilanga·1934~2005)다.

“나는 외할아버지와 1993년부터 돌아가신 해인 2005년까지 함께 살았다. 그래서 외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콘데 부족은 항상 손자나 손녀가 태어나면 친구가 된다.”

외할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부터 어디를 가는지 뭘 하는지 늘 지켜봤다.

“9살 때에 어머니와 살고 있던 나를 데려가셨다. 나를 더 가까이서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중에는 다른 도시로 보내셨다. 하지만 계속해서 연락을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1993년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 내게 처음으로 그림을 배우라고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그가 두번째 릴랑가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 키스 해링 등 서양 현대미술에 큰 영감을 건넨 아프리카 전통미술의 계보를 잇고 있는 헨드릭 릴랑가. 그에게 예술은 ‘영혼이 충만한 상태’를 전하는 행복바이러스다.
“지금 나는 릴랑가스타일 속에 살면서 그걸 소개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외할아버지가 내게 주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먼저 조각을 했고 나중에 그림을 그렸다. 그도 그림과 조각을 넘나든다.

“나의 첫 스승은 외할아버지셨다. 그 이후는 다 할아버지가 지명하신 분들이 나를 가르치셨다. 첫 스승은 외할아버지, 두번째는 노엘리 카판다, 세번째가 칼렘보, 네번째는 이마이쟈마스다. 내가 할 일은, 즉 뉴 릴랑가가 해야 할 일은 기존의 것을 모던하게 바꾸는 것이었다.”

그는 팅가팅가와 조지 릴랑가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표적 현대미술가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1932~1972·탄자니아)는 40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아프리카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아프리카의 자연과 동물, 인간을 현대적 기법으로 풀어낸 ‘팅가팅가’류의 화파를 탄생시켰다. ‘팅가팅가’는 파블로 피카소, 키스 해링 등을 비롯해 서양 현대미술에 큰 영감을 줬다. 조지 릴랑가는 아프리카 마콘데족의 전통조각과 팅가팅가류의 그림을 융합, 아프리카의 신화와 일상을 동화적 심성으로 풀어내 서구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탄자니아 다르살렘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헨드릭 릴랑가.
“마사이족처럼 자연 속에 사는 부족인 마콘데족에게도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릴랑가 작품의 이미지 스타일은 마콘데족의 연극에서 따온 것들이다. 마콘데 춤을 출 때는 가면을 쓰기도 하고 특별한 옷을 입는다. 마콘데의 조각 속에는 마콘데의 춤이 살아 있다. 릴랑가는 결국 마콘데 춤을 조각과 그림으로 바꾼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콘데의 부족들은 조각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1개월에서 3개월, 길게는 6개월 동안 마을의 어른들로부터 배운다.”

마콘데족이 생활 자립의 방편으로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조각이란다. 요즘엔 경찰봉을 만들어 정부나 경찰에 납품하기도 한다.

“스승의 영향으로 내 작품에도 마콘데족 스타일과 팅가팅가 스타일이 녹아 있다. 팅가팅가 스타일은 아프리카의 자연, 동물, 인간의 실루엣 등 이미지의 세세한 묘사를 생략하고 단순하게 처리한다. 대신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을 통해 대상의 특징을 화려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2011년 영국 BBC에서는 ‘팅가팅가’ 화풍의 동물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 창의력 개발용 애니메이션 ‘팅가팅가 이야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케냐의 신학자 존 음비티의 저서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African Religions and Philoso-phy)’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겐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라는 독특한 시간관념이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가 죽었다 해도 그를 기억하는 한 그는 여전히 ‘사사’의 시간에서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마저 모두 죽어 더 이상 기억해 줄 사람이 없게 되면 이때 비로소 그 죽은 이는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의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팅가팅가와 조지 릴랑가는 나의 ‘사사’의 시간에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다. 서구의 표현으로 하면 나의 계승으로 내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혀를 내민 인물들이 가득한 작품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혀로 ‘홀롤롤로∼’소리를 내서 그 사실을 알린다. 혀는 보통 아주 즐거운 소식을 전하는 수단이다.”

그의 그림 중심에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바오밥나무가 위치한다. 마치 한국의 당산나무 같은 존재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바오밥나무에는 어떤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 나무에 가서 기도를 드린다. 많은 주술사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오밥나무를 이용한다. 바오밥나무들은 교회나 모스크와 같은 것이다. 오늘날 젊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들도 혼자가 되면 믿는다.”

요즘도 아프리카에서 바오밥나무가 때론 잘려 나가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된다.

“바오밥나무를 자른 사람은 저주가 내려질 것이라 여기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바오밥나무를 자르지 않는다. 가끔 정부가 바오밥나무를 베기도 하지만, 그 전에 많은 사람을 불러서 기도하고 종교행사 같은 것을 행한다. 아프리카에는 바오밥나무를 절대 베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림 속엔 주로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과 이웃들이 등장한다. 노점상도 있다. 기도하는 어머니 모습도 보인다. 아티스트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다.

“별로 행복하지 않은 아빠의 모습도 있다. 딸의 이를 빼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표정이다.”

치과병원 같기도 하고 집에서 발치를 하는 모양새 같기도 하다. 실을 묶고 당겨 이를 뺐던 우리네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전통의상을 입은 패션쇼와 흥겨운 축제의 장과 더불어 행복한 가족이 있는 곳엔 늘 바오밥나무를 배치시키고 있다.

“우리는 바오밥나무를 믿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더 행복해진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어둠 속에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아프리카 마을에 가보면 근처에 바오밥나무가 있는 이유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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