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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공문서 조작에 발목 잡힌 아베…버티기 들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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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3 06:00:00 수정 : 2018-03-12 22: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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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日 ‘사학 스캔들’ / 부인 아키에 관련된 ‘국유지 특혜 매각’/재무성서 결재 문서 위조한 사실 인정/野, 실무자 징계 넘어 내각 총사퇴 요구
내각 지지율 5개월 만에 50% 아래로 ↓/총리직 걸린 9월 黨 총재 선거 패배 땐/자민당내 개헌 논의 원점 돌아갈 수도
헌법 9조 1항(전쟁 포기)과 2항(전력 보유 금지, 교전권 불인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만들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숙원이 목표 고지를 눈앞에 두고 초대형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해 불거진 이후 1년 넘게 발목을 잡고 있는 아베 총리의 ‘사학 스캔들’이 ‘공문서 조작’ 파문으로 번져 정권의 존속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경우 총리직이 걸린 오는 9월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의 오랜 꿈인 개헌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되살아난 악몽

일본 재무성은 12일 국회 보고를 통해 국유지 헐값 매각 논란 관련 내부 결재 문서를 조작한 사실을 인정했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와 각료 경험자 등 여러 정치인의 이름, 협상 경위 일부가 삭제되는 등 14건의 문서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행정 전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데 대해 행정의 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에게 진상 규명을 맡기고 이후 전모가 밝혀지면 신뢰회복을 위해 조직을 재건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만 밝혔을 뿐 별도로 책임을 지겠다는 언급은 회피했다. 하지만 야당들은 아베 총리도 이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이 문제의 시작은 2016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무성이 감정가격이 9억5600만엔(약 95억8500만원)인 국유지를 1억3400만엔에 사학법인 ‘모리토모 학원’에 매각했다. 이 학원이 해당 부지에 신설하려던 초등학교의 명예교장을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맡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지난해 2월 국회에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아베 총리는 “나와 아내가 관여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매각 담당 국장이었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당시 재무성 이재국장은 “관련 기록이 폐기됐다”며 사실 확인과 기록 제출을 계속 거부해 야당들로부터 “진상 규명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방패막이가 돼 준 ‘공로’로 지난해 7월 국세청 장관으로 영전했다.

일본 국민은 아베 정권의 오만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베 총리의 친구가 운영하는 사학법인이 50여년 만에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받는 과정에 아베 총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또 다른 ‘사학 스캔들’이 불거져 실망감을 증폭시켰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지난해 7월 20%대까지 추락했고, 같은 달 치러진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참패를 맛봤다. 정권이 붕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는 내각개편을 통해 지지율 하락세를 막는 데 성공하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어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그해 10월 치러진 총선에서 야권이 분열한 덕분에 어부지리로 승리를 챙겨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꺼지는 듯했던 사학 스캔들의 불씨는 지난 2일 아사히신문의 보도로 다시 활활 타올랐다. 이 신문은 재무성이 국회의원 등에게 제출한 국유지 매각 관련 결재 문서는 원본에 있는 ‘본건의 특수성’, ‘특례적인 내용’ 등의 표현이 삭제되거나 고쳐진 ‘조작 문서’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공문서 조작 파문으로 휘청대는 아베 정권

야당들의 계속되는 사퇴 압력에도 꿋꿋이 버티던 사가와 국세청 장관은 지난 9일 돌연 사임했다. 앞서 지난 7일 국유지 매각 당시 재무성 긴키재무국 담당 부서에서 일했던 남성 직원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학 스캔들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12일 재무성은 문서 조작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아베 정권은 버티기에 나선 모양새다. 아소 부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안타깝다”면서도 “재무성 이재국의 일부 직원이 저지른 문제일 뿐”이라며 조직적 개입 의혹을 부정했다. 그는 이어 사가와 장관이 최근 사임한 사실을 거론하며 “책임은 사가와 전 장관이 졌다”며 자신은 물러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수석 부간사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관료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고 지적받을 수 있는 정당답지 않은 자세를 보여서는 안 된다”며 아베 정권에 책임 있는 모습을 요구했다. 연립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는 “입법부를 경시하는 것으로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는 “일본의 민주주의, 의회제 민주주의 자체가 망가졌다”고 비판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10∼11일)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48%로 한 달 전보다 6%포인트 하락했다. 이 매체의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만이다. 문서 조작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지난 9일 사임 의사를 밝힌 사가와 노부히사 일본 국세청 장관이 재무성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그는 사학법인 모리토모 학원에 국유지를 매각할 당시 재무성 담당 국장이었으며, 지난해 7월 국세청 장관으로 임명됐다.
도쿄=EPA연합뉴스
◆덩달아 흔들리는 헌법 9조 개정의 꿈

아베 총리는 ‘전후 체제 탈피’를 외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패배로 생긴 굴레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것이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금지 등을 규정한 헌법 9조의 무력화다.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가 개헌을 정치적 숙원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2012년 말 재집권한 이후 본격적인 실행에 나섰다. 우선 ‘해석 개헌’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정부의 기존 헌법 해석을 바꿔 위헌으로 여겨진 집단자위권을 용인했다. 집단자위권은 동맹국 등이 공격을 받을 때 자국이 공격을 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위헌 논란이 거셌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석 개헌을 토대로 집단자위권을 용인하는 안보 관련법 제·개정을 밀어붙였다. 한술 더 떠 자위대의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지난해 총선 때 헌법 9조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아베 총리는 헌법 9조 1항과 2항을 유지한 채 3항 등을 추가해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헌법 9조 개정에 부정적인 공명당을 배려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는 ‘아베 개헌안’을 바탕으로 오는 25일 당 대회 때까지 개헌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를 토대로 국회 논의를 주도해 이르면 연내 개헌 발의까지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 찬성 세력이 국회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힘으로도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후 남은 절차는 국민투표뿐이다.

하지만 이번 공문서 조작 파문으로 아베 정권이 흔들릴 경우 자민당의 개헌 논의가 늪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등은 2012년 당 내 논의를 거쳐 마련됐던 개헌 초안을 바탕으로 논의해야 한다며 ‘아베 개헌안’에 반대하고 있다. 2012년 개헌 초안은 9조 2항을 삭제하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인 국방군으로 바꾼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공명당의 협조를 얻기가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 개헌 문제를 이슈로 삼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는 2012년 총재 선거 때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2차 결선 투표 때 아베 총리에게 역전을 당했던 인물로, 아베 총리의 최대 라이벌로 꼽힌다. 총리가 바뀔 경우 자민당의 개헌 논의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도쿄=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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