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미투는 문화혁명…사법부, 독립과 함께 책임도 강조해야"[김용출의 스토리]

관련이슈 결국, 다시 사람

입력 : 2018-03-10 13:59:09 수정 : 2018-11-10 08:28:4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영원한 내부 고발자 신평 교수 인터뷰 “구체적인 사건에 관해 판사실에서 돈이 공공연히 오고 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배석 판사가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해 부장판사가 온갖 모욕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을 직접 목도한 일이 있다.”

한 주간지 1993년 5월27일과 6월10일자에 실린 그의 기고문의 일부다. 판사실 안에서 공공연히 금품수수가 일어나고 있고 이에 반발한 후배 판사를 오히려 모욕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현직 판사의 기고였기에, 여론은 들끓었다. 법조계는 발칵 뒤집혔다. 일부 상급자는 그를 호출해선 “이럴 수가 있느냐”고 호통을 쳤고, 상당수 법조인들은 그에게 손가락질했다.

그는 결국 1993년 9월1일자 법관 인사에서 재임용에 탈락했다. “사법부 개혁을 위한 충정에서 기고한 것”이라는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행 헌법 하에서 판사 재임용 탈락 1호.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내부를 향해 고발을 이어왔고, 조직은 강하게 반발하며 도리어 그를 공격했다. 그는 ‘휘슬 블로워(whistle-blower)’, 내부 고발자였다.
신평(62)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이야기다. 1993년 판사실 돈봉투 폭로에 이어 그는 2014년 동료교수 성매매 의혹, 2016년 로스쿨 문제점 등 내부 고발을 이어왔다.

자신이 속한 조직 내부의 아픈 부문을 지적했기에 반발도 역시 컸다. 재임용에 탈락하거나 징계를 받았고 심지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내부 고발자로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소설가 김명조씨의 장편 '로스쿨교수 실종사건'으로 소설화되기도 했다. 김씨는 그를 독일 나치 만행을 폭로한 평화주의자 에밀 굼벨 교수 같다고 표현했다.

서지현 검사의 내부 고발 이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오래 전부터 내부 고발을 계속해온 신 교수를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만났다.

아직 늦추위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는지 그는 잠바를 입고 나왔다. 손에는 책과 서류가 담긴 두툼한 노란 봉투가 들려 있었다.

미투 열풍 속에서 신 교수의 내부 고발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한편, 김명수호의 사법개혁에 대한 그의 의견과 조언도 들어봤다. 다음은 신 교수와의 일문일답.

―먼저 1993년 사법부의 내부 문제를 고발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1990년 펴낸 책 '일본 땅 일본 바람'에서 한국 판사들의 일부 일탈 행위를 언급했다. 그게 판사들의 분노를 샀다. 주간지는 내 책을 보고 기고 요청을 했고, 처음에는 몇 번 거절했다가 ‘내가 아니면 누가 쓰겠나’ 하고 생각해 기고하게 됐다. 다 좋았는데 법관 판사실에서 돈 봉투에서 돈이 오간 것으로 들었다는 식으로 언급한 게 파문을 낳았다.”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직접 목도한 일”이라고 적시돼 있는데.

“사실은 (판사의 돈 수수 현장을) 직접 봤고, 내가 당한 거였다. 자세한 정황을 말하면, 그때 (내가 인천지법) 형사 합의부에 있었는데, 부장 판사는 당시 전두환씨의 장인 이규동씨와 가까운 친척 A씨였다. A 부장판사는 금전적인 욕구가 강해 공공연히 (돈) 봉투를 받았다. 한 번은 과거 평판사로 근무할 때 인연이 있던 사람이 인사하러 왔는데, 그 사람이 가고 난 뒤 우리 앞에서 욕을 하더라. ‘저 새끼 이런 놈이 다 있어, 옷차림이 그게 뭐야.’ 나는 그러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또 오더니 A씨 책상 서랍 문을 열고 봉투를 하나 넣는 걸 봤다. 지난 번에 그토록 욕하던 A 부장판사가 의자에 앉아 좋아서 웃더라. A씨의 태도가 돌변한 건 봉투 하나였다. 제가 초임 판사 때였으니까 1984년도였다. 당시 국회의원 공천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이규동씨와 가까운 A 부장판사 방을 자주 찾았다. 뛰어난 사람도 있었고,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하곤 했다.”

―공천을 받기 위해 A판사에게 머리를 조아린 사람 가운데 지금 유명한 사람도 있느냐.

“그것은 말 못하겠다. 나이가 이러니까(웃음).”

―부장 판사와 관계가 좋지 않았을 것 같은데.

“1983년 9월1일 판사 발령을 받은 뒤 처음 맞는 추석이었다. 당시 인천 변호사회 회장이 촌지를 돌렸다. 부장과 우배석 판사에게 준 뒤 좌배석 판사인 나에게도 오더라. 그때만 해도 정의감이 살아 있어 ‘회장님,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고 하니까 연세 많은 변호사회장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새파란 후배가 관행적으로 주는 봉투를 거절했으니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겠느냐. 얼굴색이 변하는 걸 보고 ‘아 받지요’ 하고 받았다. 당시 그런 정도의 의식을 가진 내가 부장 판사의 행태를 보고 어떻게 불만을 갖지 않았겠느냐. 부장 판사와 자꾸 어긋났다. 최근 들어 안 사실이지만, 인천 어부들의 간첩 조작 사건도 이 재판부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당시 부장 판사가 다했다. 합의부라 했지만 ‘합의’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신 교수는 결국 판사 임용 10년 만인 1993년 9월1일자 판사 재임용에 탈락했다. 그의 재임용 탈락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법부의 잘못된 행태를 내부 고발한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복직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재임용에 탈락한 이후 일각에서 과도한 처분이었다는 말이 나오면서 (윤관 대법원 체제에서) 복직 움직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복직을 기다리며 하는 일 없이 도시락 싸들고 (대구의) 용지봉에 오르곤 했다. 마음이 아주 맑은 상태여서 나비나 잠자리를 보고 ‘나비야 이리 오너라, 잠자리야 이리 오너라’ 하면 나에게 내려앉았다. 모든 걸 포기한 순수의 세계였다. 이듬해 1월이 되니 ‘다시 재임용을 받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1월20일쯤 개업했다.”

신 교수는 개업 초기 사건 수임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법원 안팎에서 동정 여론이 형성되면서 많은 사건을 맡게 됐다.

변호사를 5년 정도 한 그는 1997년 대구가톨릭대 겸임교수로 초빙된 뒤 전임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4년 8월22일. 신 교수는 경북대 인터넷 게시판에 동료 교수 B씨의 공무출장 중 성매매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검찰은 B교수의 성매매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4년 전 동료교수의 성매매 의혹 제기는, 요즘 미투 같은데, 증거나 정황이 있었는가.

“저는 B교수랑 같이 중국 출장을 갔다. 그런데 제가 호텔에 자고 있는데 새벽쯤 B교수가 와서 ‘여자가 왔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저에게서 돈(위엔화)을 빌려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날 원화로 환산된 금액을 돌려 받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취지의 말도 들었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호텔에 들어가기 전 들른 술집은 한국식의 룸살롱인데도 단순한 찻집으로 둔갑시키더라.”

신 교수는 폭로 이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016년 2심에선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상고했는데 대법원에서 아직 판단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2016년 3월 로스쿨의 부실한 실무 교육 실상을 비판한 책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을 펴냈다가 다시 곤욕을 치뤄야 했다.

―국내 로스쿨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책은 로스쿨 입학 비리로 화제가 됐지만, 로스쿨의 본질적인 문제는 교육과정이 너무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3년 과정에 이론과 실무를 충실히 제대로 된 법조인을 길러낸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다. 한국은 대륙법 체계에 속한 나라인데 대륙법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연히 미국 제도가 좋으니까 해보자 하면서 밀어붙인 그 방자와 오만이 파탄 원인이 됐다.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학부 성적이 얼마나 중요한가.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알바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로스쿨에 못들어간다. 있는 집안 자식들만 로스쿨에 들어가는 구조다.”

―학생이나 구성원이 문제인지, 시스템 자체가 부실한 것인지.

“시스템이 문제다. 3년 안에 할 수 없는 걸 하려고 하면서 부실하게 된 것이다. 교육과정이 부실해 변시(변호사시험)에 합격해도 빈약한 실력을 갖춘 변호사가 된다. 여기에서 또 문제가 나온다. 그나마 아버지 할아버지 등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로펌에서 제대로 된 수업을 받고 훌륭한 법조인의 길을 걸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집안 자제는 밑바닥만 깔아준다. 부모에 의해 법조인 장래가 결정되는 건 아주 잘못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는 크게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검찰과 경찰 수사권 조정 등을 먼저 한 뒤 사법권 독립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사법개혁을 일관한 가치철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국가적 자원을 투입해 사법개혁을 이룩하려고 하는 것인가에 대한 선연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사법 책임을 강조하고, 국민 뜻을 존중하며, 법조양성 제도를 바꾸는 개혁을 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개혁을 평가한다면.

“세계 법학 주류에서 사법부 독립만 주장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사법부의 독립만이 아닌 책임도 함께 강조한다. ‘사법의 과도한 독립은 그 구성원들에게 잘못된 특혜를 주고 사회적 수요에 반응하지 않는 독재 기관으로 바꿔버린다’는 날선 비판도 있다. 사법의 독립을 보장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실현할 수 있다는 낡은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법의 책임과 공정한 재판을 위해선 뭐가 필요한가.
“전반적으로 사법 틀을 바꿔야 한다. 로스쿨부터 시작해 재판 체계도 바꿔야 한다. 지금 재판국민참여제도도 허울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 걸 바꾸고 선진 사법 시스템을 하루 빨리 갖춰야 한다. 기껏해 이홍훈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앉혀 무얼 하겠다고 하는데 우스운 일이다. 세계 법학의 조류에 맞게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내부 고발자 신 교수는 1956년 대구에서 10남매 가운데 막내 아들로 태어났고 경북고를 거쳐 1974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은 어땠는지.

“대학 시절 법이나 법학이 갖는 기능적 한계를 자각하고 강하게 저항을 했다. 법이라는 건 결국 강자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도모해주는 수단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법학 공부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쓰레기 같은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막걸리 마시고 술취한 상태에서야 겨우 책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비참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인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0년간 판사로 재직한 뒤 변호사를 거쳐 현재 대학에서 강의 중이다. 2010년 대구 교육감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쓴 책도 많던데. 
“'키 큰 판사 작은 아이들'(1994년)은 아이들을 얻어 키우며 아이들에게 당부한 것을 기록한 것이고, '한국의 사법개혁'(2009년)은 사법부의 독립만이 아닌 사법부의 책임을 강조한 책이다.”

―영원한 내부 고발자로서 요즘 미투를 어떻게 보는가.
“대학 사회에서도 학점이나 학위를 매개로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지배관계를 자주 봤다. 한번은 아끼던 제자가 갑자기 힘을 잃고 방황하는 걸 봤다. 어느 교수에게서 심한 취급을 받았다는 풍문을 언뜻 들었다. 조용히 물어봤지만, 제자는 대답하지 않은 채 굵은 눈물만 떨구더라. 그 잔상이 아직 머리 속에 맴돈다. 미투 운동은 인류 사회의 오랜 치부를 청산하는 위대한 문화혁명이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신평 교수 프로필
△대구 출생(1956) 
△경북고·서울대 법대 졸업(1978) 
△사법고시 합격(1981·23회·연수원 13기) △인천지법 판사 임관(1983) 
△1993년 판사 재임용 탈락(1993) 
△변호사 개업(1994∼2006) 
△대구가톨릭대·경북대 교수(2006∼현재) 
△대구 교육감 후보 출마 낙선(2010) 
△<일본 땅 일본 바람>(1990), <한국의 사법개혁>(2009),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2016) 등 저술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