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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중매 외교’에 획 그은
대북특사단 방북과 평양 회동
‘중매 못 하면 뺨 석 대’ 잊지 말고
과속·부주의 경계하며 길 찾기를
9월부터 국내 모든 도로를 달리는 차량 탑승자는 반드시 안전띠를 매야 한다. 뒷좌석에서도. 도로교통법이 지난달 말 그렇게 개정됐다. 안전띠 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안전띠가 필요한 곳은 더 있다. 사실 이쪽이 훨씬 급하다. 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한반도 운전석이다. 이 운전석, 이 안전띠는 형체가 없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없다. 관련 국가들이 각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재주껏 만질 뿐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북한은 문재인정부를 안전띠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 뒤에 숨어 국제 제재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다. 미국은 ‘최대의 압박’을 안전띠로 여긴다. 문재인정부의 안전띠는 뭘까. ‘중매 외교’다. 북·미 대화가 성사되도록 다리를 놓아 한반도 위기지수를 낮추려는 심산이다. 대북특사단이 어제 평양에 도착해 대북 접촉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인선에 열과 성을 다했다. 중매 외교에 한 획을 그은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3·1절 기념사에서 북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한·미동맹 가치를 강조하지도 않았다. ‘한반도 평화·경제공동체’,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다짐했을 뿐이다. 북·미를 잇는 중매를 지상과제로 간주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안전띠, 과연 안전한가.

안전띠에 대한 무한 신뢰는 위험하다. 심지어 차량 안전띠조차 그렇다. 물론 대다수 국내외 통계는 안전성을 역설한다. 안전띠를 매지 않을 때 교통사고 치사율이 2.4%로, 평균 치사율의 12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회의적 검토를 요구하는 연구자료도 허다하다. 위험 연구로 널리 알려진 영국 학자 존 애덤스는 안전띠 의무화로 교통사고 사망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안 좋은 운전 습관을 부추겨 보행자나 자전거족은 더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 샘 펠츠먼도 같은 맥락의 논문을 냈다. 회의론을 통합하는 개념도 있다. ‘위험 항상성 이론’이다. 위험 총량은 언제나 일정하다는 것이다. 안전띠만 믿을 일이 아니다.

중매라는 안전띠는 어떤가. 이것은 기초적 성능 검증서조차 없다. 궁여지책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중매, 가즈아!’만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한·미 혈맹관계가 뒤틀리는 부작용이다. 문 대통령이 최근 “(협상) 문턱을 낮추라”고 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직 올바른 조건 아래서만 대화하겠다”고 했다. 엇박자였다. 매사에 이런 식이다. 이러다 중매의 끝자락에 북한의 이간책만 남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안 들 수 없다.

특사단은 오늘 북한 일정이 마무리되는 즉시 미국으로 향한다. 미 백악관 선택에 중매의 일차적 성패가 달려 있는 현실을 웅변하는 일정이다. ‘대북특사보다 대미특사 파견이 급하다’는 여론에 부응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특사단은 평양보다 워싱턴에서 더 힘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미 양국이 같은 편이란 점을 의심받는 불상사는 없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

스카이다이버 세계에는 ‘부스의 두 번째 규칙’이란 불문율이 있다. 유명 다이버 빌 부스가 제시한 규칙이다. 다이버 안전을 보장하는 첨단장비가 나와도 사고·사망률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내용이다. 왜 그런가. 다이버들이 장비를 과신해 더 큰 위험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위험 항상성 이론’이 여기서도 작동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9월 이후 안전띠 문화에 대한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과속·부주의 운전 등의 반칙이 횡행하면 백약이 무효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지정학도 마찬가지다. 중매를 과신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 무엇보다 과속과 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 못하면 뺨이 석 대’라고 했다. 뺨 석 대는 국가적 재앙이 되게 마련이다. 그것을 피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길을 찾아야지, 그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길이 보인다고 폭주할 계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론, 뭐가 진짜 안전띠인지 재삼재사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중매가 맞는 것일까.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리기 쉬운 중매라면 더더욱 조심스럽게 임해야 한다. 옛 속담도 가르치지 않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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