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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책임 쓱 피해 간 ‘미투 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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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03 13:56:44 수정 : 2018-03-05 19: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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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못 살아왔습니다. 다 내려 놓겠습니다.’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성폭력 전력이 드러난 인사들이 사과문에 빠짐없이 넣는 표현들이다. 현재까지 20명 가까운 유명 인사들이 과거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 사과했다. 이들의 반성은 통렬하다. ‘부끄럽다. 뼈저리게 사죄한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그러나 이들의 사과문을 뜯어보면 법적으로 책임질 근거가 될 만한 내용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네티즌 역시 이런 현상을 ‘만능 사과문’이라는 표현으로 꼬집는다.

◆“다 내려놓겠습니다.”

이제까지 나온 사과문들에 공통으로 들어간 내용은 ‘사죄와 책임’이다. 무엇에 대한 사죄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제 잘못’이라고 두리뭉실하게 표현했다. 지난 24일 사과문을 발표한 배우 조재현은 “전 잘못 살아왔습니다”라며 “저는 죄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전 이제 모든 걸 내려놓겠습니다”라며 “제 자신을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일시적으로 회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비장한 다짐을 전했다.

26일 사과문을 발표한 연극 연출가 김석만 역시 “제 잘못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질 것이며, 남은 일생동안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며 반성하며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배우 조민기는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잘못”이라며 “늦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남은 일생 동안 제 잘못을 반성하고, 자숙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은 ‘저는 죄인’이라면서도 사실 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김석만의 경우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다만 폭로의 내용은 제가 기억하는 사건과 조금 거리가 있음을 알립니다”라고 변명했다.

연극 배우 김태훈 역시 ‘세종대학교 교수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도 “사실관계가 어떠하든지 받았던 상처의 크기는 같을 것이나, 제가 기억하는 사실관계가 게시글이나 보도와는 다른 부분이 있고”라며 사죄보다 더 긴 내용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피해자 A씨에 대해 당시 유부남이었음에도 피해자와 사귀는 관계였다, 피해자 B씨에 대해서는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

배우 오달수 역시 피해자 C씨에 대해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적었고, 윤호진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 대표 역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며 단서를 달았다. 
사진=연합뉴스
◆법적 공방 때 유죄 근거될 만한 내용은 없어

이들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비장하게 적었지만 실제로 사과문에 법적 책임을 질 근거가 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너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면 사과해’라거나 범행에 대한 인정은 비껴가면서 ‘이제껏 잘못 살아왔다’며 감정적으로 미안해 하는 건 법적으로는 의미 없다”고 설명했다. 서 이사는 “예를 들어 피해자가 강간이라고 주장하면 ‘맞아요 강간했습니다’라고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물으신다면 성실히 조사 받겠다’고 해야 법적 책임을 논한 게 된다”며 “그 정도가 아니면 도의적 사과에 그친다”고 말했다.

서 이사는 “이번 ‘미투 사과문’에서 첫 번째 전략은 감정적으로 ‘잘못했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라고 하는 것”이라며 “그 뒤에 그렇지만 좋은 감정이었다든지 연애감정이었다며 불륜을 고백하거나 가장 나쁘게는 합의에 의한 거였다고 덧붙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는 성범죄 혐의를 피해가려는 수단으로 보인다”며 “일반적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하는 변명도 똑같다. 이들도 호감 있었다, 좋아했다, 합의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서 이사는 “피의자로 몰릴 경우 누구에게나 자기負罪(부죄) 거부의 특권(범죄를 저질렀다고 기소되거나 의심받는 사람이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하는 권리)이 있기에 사과문에서 법적 책임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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