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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 "삶터서 계속 밀려나는데… 우리가 그렇게 불편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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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02 06:00:00 수정 : 2018-03-01 21: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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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블랙리스트 3인방 가상 대화로 들어본 ‘인간과 공존 해법’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지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건부로 그렇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때.’

여기서 말하는 피해란 사람이나 사람이 기르는 가축을 위협하는 것뿐 아니라 농작물을 뜯어먹거나 정전을 일으키는 것, 문화재 주변에서 배설하거나 털을 날리는 것까지 범위가 넓다.

‘감히’ 사람에게 피해를 준 동물은 유해야생동물로 분류된다. 정부는 유해야생동물의 피해를 예방하겠다며 매년 겨울 전국에 수렵장을 열고 대대적으로 포획한다.

이번 겨울에도 정부는 전국 18개 수렵장에 엽사들을 불러모았다. 최대 포획 가능 수량은 92만마리. 보통은 최대 목표의 50% 정도가 잡혀 이번엔 40여만마리가 포획됐을 것으로 보인다.

험난한 겨우살이 끝에 한숨 돌리는 멧돼지와 고라니, 까치를 <지구의 미래> 토론회에 불렀다. 전문가와 관련 서적 내용을 토대로 구성한 동물들의 대화를 들어보자.

고라니. 안산시청 최종인씨 제공
◆고라니 4분의 1을 잡았다고?

멧돼지=“모두 무사하셨군요. 오늘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유해조수라는 불명예를 떨치고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사람과의 공존, 그 해법을 찾다’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네요.”

까치=“너무 점잖게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니, 생태계에 제일 민폐를 끼치는 게 누군데 함부로 유해야생동물을 지정한답니까. ‘유해동물은 바로 너야 너, 인간’ 이 정도는 돼야죠.”

멧돼지=“시작부터 흥분하면 토론을 원활히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먼저 현황부터 전해주시죠.”

고라니=“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자료를 가져왔는데요, 2016년 저희 고라니는 ㎢당 8.0마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걸 전체 산림면적으로 계산하면 45만마리로 추정되네요. 2012년에는 ㎢당 7.5마리였는데 최근에는 8.0마리 선에서 왔다 갔다 한다고 합니다.”

까치=“저희 까치는 ㎢당 17.5마리, 전체적으로는 100만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라니 쪽과 달리 저희는 2012년 ㎢당 19.9마리에서 점차 주는 추세입니다.”
멧돼지.
멧돼지=“그렇군요. 멧돼지는 ㎢당 4.9마리, 총 30만마리가 있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엄청나게 잡는 것 같은데도 2012년 ㎢당 3.8마리에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고라니=“그런데요, 이 자료 믿을 수 있는 겁니까. 2016년 포획 자료를 보니 고라니 11만3763마리, 멧돼지 3만3317마리, 까치 6만2403마리로 돼 있어요. 수렵장에서 잡은 것 말고 신고가 들어와서 연중으로 잡아들인 게 이 정도라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2016년에는 고라니 4마리 중에 1마리 이상이 사냥당했단 뜻인데, 이게 말이 되나요? 개체 수든 포획 건수든 통계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희 고라니는 머잖아 씨가 마를 수도 있다는 뜻인데… ㄷㄷㄷ”

까치=“우리나라 야생동물 개체 수 조사가 신뢰하기 어렵단 얘기는 많이들 합디다. 포획 건수 집계도 주먹구구란 말이 들리고요.

◆살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멧돼지=“제가 우리한테 씌워진 혐의가 뭔지도 알아봤습니다. 고라니님과 저는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 농림수산업에 피해를 준 죄가 있고요, 저는 여기에 더해 인가 주변에 출현해 인명과 가축에 위해를 가한 죄, 분묘를 훼손한 죄가 있네요. 까치님은 장기간에 걸쳐 무리 지어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준 죄, 전력시설에 피해를 준 죄 이렇게 적혀 있네요.”

까치=“제가 과일을 쪼아먹었다거나 정전을 일으켰다거나 하는 것까지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물론 할 말이야 있죠. 나는 배가 고파서 과일을 먹었을 뿐이고, 전봇대에 집을 짓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정전을 일으킨 것이고. 다 먹고살자고 하다 보니 벌어진 일 아닙니까. 뭐 그래도 어쨌든 사람들이 괴롭다고 하니 백번 양보해 저희가 잘못했다고 칩시다. 문제는 사람들의 이중성입니다. 전국 17개 시도에서 저희가 제일 많이 잡히는 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제주도예요. 매년 5만∼6만마리가 사냥되는데 그중에 20∼30%가 제주도에서 잡혀요. 그런데 ‘웃픈’(웃기고도 슬픈) 건요, 원래 저희는 제주도에 살지 않았다는 겁니다. 1960년대에 한 단체에서 제주도에 방사했다 실패하고 1989년에 모 기업들이 길조인 까치를 제주도에 살게 하자고 53마리를 풀었어요. 그게 늘어나서 지금 제주도에 10만마리 넘는다고 해요. 억지로 잡아다 살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귀찮으니까 총으로 잡는 겁니다. 이게 뭡니까.”

멧돼지=“저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중성이 이 나라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영국에서는 400년 전에 멧돼지가 멸종했는데요, 1970년대에 식용으로 기르려고 다시 들여왔답니다. 그러다 몇 마리가 야생으로 나갔는데, 개체 수가 늘어나 영국 남부에서는 ‘멧돼지와의 전쟁’을 선포한 곳도 있다더라고요. 어쩌다 야생으로 나갔는지는 몰라요. 축사 생활을 못 참은 멧돼지가 뛰쳐나갔다는 설도 있고, 농장 운영이 어려워진 농장주가 몰래 야생에 풀었다는 얘기도 있고… 둘 다 맞는 말 아닐까 싶네요.”

고라니=“사실 우리도 피해자 아닙니까? 우리라고 사람들이랑 마주치고 싶어서 마주치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저기 도로를 내고, 산 깊은 곳까지 등산로니 둘레길이니 하면서 자꾸 길을 만드니까 우리도 밀리고 밀려서 사람들 마을로 내려오는 것 아니냐고요. 제가 도로 얘기를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우리 엄마가 지난해 국도 35호선을 건너다 그만….”
까치.
까치=“매년 고라니 6만마리가 차에 치여 죽는다더니…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멧돼지=“멧돼지도 산에서 행동반경이 너무 좁아졌어요. 제가 사는 북한산은 말이죠, 면적이 76.9㎢밖에 안 되는데 탐방로는 97개나 있어요. 총 길이가 217㎞도 넘어요. 강변북로(35.2㎞) 6개가 나 있는 셈이죠. 탐방로 때문에 북한산은 275개로 나뉘어졌는데요, 그중에서 274개 구역이 5㎢ 이하고, 단 1곳만 10㎢를 넘어요. 이렇게 산을 조각내놓고, ‘눈에 띄면 쏜다’고 하니 황당한 노릇이죠.”

까치=“저희 새들은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고초를 겪어요. 얼마 전 기사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조류판 ‘농약사이다 사건’이 일어났잖아요. 떼죽음한 새 633마리를 수거해 검사해봤더니 88%인 566마리에서 농약이 나왔더라는 소식 말이에요. AI 때문에 저희를 미워한 사람들이 볍씨에 농약을 묻혀 뿌렸나보던데, 정작 폐사한 새들 중에 AI가 검출된 새는 없어서 저희가 분개했더랬죠.”

멧돼지=“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산에서 고라니님과 똑닮은 분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더니 막 도망가시던데요? ‘동물 잘못 봤어’ 이러면서요.”

고라니=“사향노루를 저로 착각하셨나보네요. 송곳니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게 저랑 좀 닮았죠? 걔가 피해의식이 좀 있어요. 예전에 밀렵을 많이 당해서 지금 멸종위기에 몰렸거든요. 그래서 귀한 몸이에요. 천연기념물이죠. 저인 줄 알고 함부로 잡았다간 큰일나요. 생긴 건 비슷한데 운명은 참 다르죠?”

멧돼지=“왜 두 분의 운명이 엇갈린 건가요?”

고라니=“사향 때문이죠. 사향노루한테는 배에 사향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향이 아주 좋아서 향수 원료로도 쓰이고 말려서 약재로도 쓰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국제적으로 천연 사향 거래가 금지됐는데도 암시장에서는 ㎏당 4만5000달러(약 4900만원)에 거래된다나봐요. 그런데 저희도 무슨 이유에선지 밀렵을 당해요. 2012년부터 5년 동안 밀렵·밀거래된 동물 중에 꿩 다음으로 많은 게 글쎄 저희라니까요.”
◆생태계 가치 따져주길

까치=“겨울은 무사히 버텼지만 이번 봄은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멧돼지=“그러게 말입니다. 봄이 되면 새끼들이 슬슬 독립해나가는 시기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특히 아들녀석들이 문제예요. 이놈들은 행동반경이 넓어서 봄철에 포획되는 건 대부분 1년 미만 수컷들이죠.”

고라니=“고라니도 비슷해요. 포획된 것 55%가 20㎏도 안 되는 새끼였고, 수컷이 약간 더 많았어요. 로드킬당한 녀석도 절반 이상이 1년생 수컷 고라니였다고 하네요. 불쌍해라….”

멧돼지=“이제 슬슬 자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까치=“우리를 한번쯤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맘 놓고 포획해도 될 만큼 우리가 많은 건지, 아니면 우리의 고향이 망가져 단지 사람들 눈에 더 잘 띄게 된 건지도 제대로 들여다봤으면 좋겠네요. 서울대 주변 관악산에 사는 제 친구가 그러는데요, 거긴 요즘 번식성공도가 뚝 떨어졌대요. 1990년대 후반에는 알 6개를 낳으면 4∼6마리가 둥지에서 나와(이소) 독립하는데 요즘엔 많아야 3마리, 보통은 1∼2마리만 이소한다더군요. 나머진 폐사하고요.”
고라니=“그러게 말입니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만 천덕꾸러기 신세지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잖아요. 이웃한 중국만 해도 저희를 복원한다고 하고요. 특히 우리나라에 사는 고라니는 중국 고라니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치명적인 질병이라도 돌면 말그대로 ‘한번에 훅’ 갈 수 있어요. 정부는 우리가 45만마리일 거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10만∼75만마리로 추정해요. 추정치가 65만마리나 차이가 난다는 건 그만큼 데이터가 부정확하다는 의미죠. 우리를 유해조수라 부르기 전에 생태계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함께 판단해줬으면 좋겠어요.”

멧돼지=“동의합니다. 호랑이, 늑대, 스라소니, 표범… 100년 전만 해도 이런 맹수가 멸종위기가 될 거라고 생각 못 했겠죠. 해수구제 몇십년 만에 이젠 전설의 이름이 됐네요.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좀 아찔합니다. 올 한해도 무사하길 바라며 내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납시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도움말·참고자료=김백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 이상임 대구경북과기원 교수, 이석열 서울멧돼지출현방지단장, <한국 고라니>(국립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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