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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악운 징후 과학으로 입증 / 국정 자신감이 과속으로 이어져 / 역대 정권 전철 밟지 않으려면 / 겸허한 자세로 국민과 함께 가야 미국의 심리학자인 대처 켈트너는 세 명이 한 조를 이룬 집단에서 무작위로 한 사람을 조장으로 택해 다른 사람의 토론에 점수를 매기는 일을 맡겼다. 토론이 끝난 후 다섯 개의 쿠키가 담긴 접시를 가져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다섯개 중 세 개는 세 명이 각각 하나씩 먹었다. 그럼 네 번째 쿠키는 누가 먹을까. 대부분의 경우 조장이 네 번째 쿠키를 먹었다.

아일랜드의 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이 ‘승자의 뇌’(원제: Winner Effect)라는 저서에서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하며 제시한 사례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권력은 뇌 속 화학적 상태를 바꿔 놓는다. 지위나 인기를 갑자기 얻은 사람에게 종종 “뜨고 나니 사람이 변했네”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는 당사자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승리를 경험하거나 권력을 얻으면 실제로 그의 뇌가 바뀌기 때문이다.

집권 2년차 징크스도 뇌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1년차 때는 조심스럽게 국정을 운영하다, 2년차에 접어들면 권력 운용에 자신감이 붙으며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뇌과학으로 해석하면 집권 2년차에는 정권 운용자의 뇌 속에 공격적 성향을 담당하는 테스토스테론, 쾌락·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증가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김영삼정부 이후 박근혜정부까지 세계화·햇볕정책·행정수도·4대강·통일대박 등 각 정권의 대표정책이 모두 집권 2년차에 본격화됐다. 과속에 따른 탈선과 혼선, 권력남용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도 2년차째다. 김영삼정부 청와대 부속실장의 돈봉투 사건을 시작으로 김대중 정권의 옷로비 사건, 노무현 정권의 대통령 형 피소, 이명박 정권의 전직 대통령 서거,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사건 등이 모두 2년차에 터졌다.

반면 집권 2년차가 되면 국민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평가는 냉정해진다. 국민들이 첫해에는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지만 2년차부터는 구체적인 실적과 안정감을 요구한다. 정권의 지나친 자신감과 허니문 기간을 끝낸 국민들의 냉정한 시각이 맞물리면 국정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때가 2년차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월 30일 현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2년차 국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국민과 정부의 관계는 1년차 때는 연애 같고 2년차는 결혼 같다”며 “우리에게 놓인 엄청난 숙제가 만만치 않다”고 강조했다.

2년차 징크스 우려에 문재인정부 사람들은 “우리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이미 여러 곳에서 전형적인 2년차 징크스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 정부는 새해 들어 헌법 개정, 최저임금 인상 등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나라의 기본틀을 바꾸고 정권의 운명을 가를 만한 사안들인데, 그만큼 신중하고 정교하게 추진 전략이 다듬어졌는지 의문이다.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정책 혼선도 빚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번복,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백지화, 여야 합의를 뒤집은 아동수당 100% 지급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박창억 논설위원
문재인정부에서 과속과 혼선이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역시 남북관계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속도 조절에 나섰지만, 현 정부가 서둘러 대북특사를 파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미국과 긴밀한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국내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며 추진된다면 남북정상회담은 틀림없이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가뜩이나 문재인정부는 2년차 징크스에 빠지기 쉬운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권 출범 이후 줄곧 60%가 넘는 지지율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견제세력인 야당은 무기력하고 존재감이 미약하다. 자신감을 넘어 자만과 과욕이 작동할 여건이 충분하다. 과거 정부 2년차에 집권세력의 일방통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 모두 ‘우리는 예외’라며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년차에 국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이 정부의 동력이었던 촛불민심이 냉담하게 변해갈지 모른다”는 이 총리의 발언이 빈말이 되어선 안 된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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