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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이상헌의 브로맨스, 평창의 실버 보이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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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24 17:21:33 수정 : 2018-02-24 17: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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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키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긴 이상호(23)는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극적인 메달이자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다.

이상호는 24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준우승,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60년 스쿼밸리 대회부터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스키가 올림픽에서 처음 따낸 메달이다. 2017년 3월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획득, 한국 스키 사상 첫 월드컵 메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 이상호는 한국 스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대한민국 이상호 선수가 플라워 세리머니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상호의 최근 국제무대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3월 터키에서 열린 FIS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따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올 시즌 월드컵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일이 잦았다. 최고 성적은 7위지만 지난달 28일 마지막 모의고사이던 불가리아 반스코 월드컵에서 13위에 그치며 아쉬움을 자아냈다.

이처럼 이상호가 난조를 겪자 이상헌(43) 감독은 올림픽 직전 1주일 휴식이라는 특약 처방을 내렸다. 누적된 피로가 성적 부진의 원인이라는 판단에서다. 잘 알려진 대로 이상호는 강원도 정선 출신이다. 어릴 적 마땅한 훈련장이 없어 근처 고랭지 배추밭 눈썰매장에서 스노보드를 타 ‘배추보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경기 뒤 이상호는 “아직 너무 기쁘거나 그런 느낌은 사실 없다. 아직은 믿기지 않아서 그렇다. 일단 코치님이 '4강에 오른 것만 해도 충분히 잘 했다'며 격려를 해주셨고 '지금처럼 타면 누구도 너를 이길 수 없다'고 자신감도 북돋워 주셨다. 후회 없이 타자는 마음으로 집중한 것이 좋은 결과로 나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설상 종목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 스노보드가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감독이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세심한 지도를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2012년부터 대표팀을 지도한 그는 1년 중 10개월을 선수들과 같이 보낸다. 전지훈련과 대회 참가로 연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내고 국내에서도 합숙훈련에 돌입한다. 이상호, 김상겸 등 지금은 세계 정상급 기량을 뽐내고 있는 선수들도 6~7년 전 유망주 시절부터 그와 함께했다.

이상호의 아버지 이차원 씨(오른쪽)와 이상헌 감독이 24일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경기가 끝난 뒤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감독은 “선수들과는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 누구보다 친밀한 사이다.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기분을 아는 정도가 됐다”며 “스노보드가 당일 컨디션에 성적이 좌우될 만큼 민감한 종목이라서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될 수 있으면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 ‘스노보드 1세대’로 불렸다. 용인대에서 사회체육을 전공한 그는 1998년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스노보드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계기로 스노보드를 처음 접했다. 그러나 열악한 지원으로 자비를 들여 훈련과 대회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 스노보드 대표팀은 1993년 인준됐지만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종목에 김호준(27)이 최초로 올림픽에 나올 만큼 발전이 없었다.

제대로 된 코칭스태프도 없이 2005년까지 선수 겸 코치로 뛴 그는 30세의 나이에 일찌감치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부족한 지원 속에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감내해야 했다. 대표팀을 맡았을 때도 선수들을 관리할 사람은 이 감독 한 명뿐이었다. 이 때문에 해외 전지훈련 때면 이 감독은 경기 준비를 비롯해 비디오 촬영, 장비 점검을 도맡았다. 심지어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무려 950㎞에 달하는 거리를 한숨도 자지 않고 운전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외국 전지훈련을 가면 경비가 넉넉지 않았다. 호텔 대신 현장 주변의 값싼 아파트를 대여했고 선수들 입맛에 맞게 한식을 직접 만들었다. 일종의 서비스맨 역할을 다 해야 했다”며 “지금은 지원이 많아진 덕분에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됐다”며 밝게 웃었다.

평창=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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