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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성폭력, 보고도 침묵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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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24 16:32:28 수정 : 2018-02-24 16: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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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미투 운동이 끝모를 기세로 이어지고 있다. 내용은 하나같이 일반인의 상식수준을 뛰어넘는다. 여배우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기는가 하면, 유명 문인은 술자리에서 버젓이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은 그 자리에 함께 했거나, 이런 성폭력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어째서 수십년간 방관했는가 하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문화계 자체의 폐쇄성이 꼽힌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계에선 유력자의 권력이 엄청나게 크다. 이윤택 연출가가 상상을 초월한 성폭력을 저지르면서도 그런 사실이 은폐될 수 있었던 건 혹여나 입을지 모를 피해를 우려한 방관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 예술을 위해 작은 공동체이다보니 개인에게 희생을 거리낌없이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연희단거리패 단원이었던 홍선주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김소희 연희단패거리 대표가) 안마를 조력자처럼 시키고 후배들을 초이스(선택)하는 역할을 했었다”며 “안마를 거부했더니 쟁반으로 가슴팍을 밀치고 치면서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이냐. 빨리 들어가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성폭력에 반발하면 이를 ‘이기적’이라고 몰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었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일부에서는 성폭력의 ‘거장의 예술적 일탈’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던 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예술이란 미명하에 범법을 옹호하고, 이를 묵인하는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조직적 규율이 부재한 문화계에서 이런 문화가 나타날 개연성이 높았다는 분석이다.

특정한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성폭력을 재단해왔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1994년 단편 소설 ‘사로잡힌 악령’으로 고은 시인과 그 주변 문단의 성폭력을 고발했다. 그러나 이씨의 소설은 고은이 소속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공격을 받으며, 결국 이씨는 자시의 작품 목록에서 ‘사로잡힌 악령’을 제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윤택 작가의 성범죄를 고발한 김보리(가명)씨의 말은 울림이 깊다. 김씨는 “저에게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어 안마를 지시하던 선배, 강압적으로 유사 성행위를 하는 악마를 보고도 말없이 운전만 하던 선배, 아닌 줄 알면서도 조금 더 힘이 있던 선배들이 후배들을 보듬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로 인해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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