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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미국 방산업체에 점령당한 한국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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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25 06:00:00 수정 : 2018-02-24 1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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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보는 미국 방산업체가 떠받치는 것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한반도 하늘과 바다를 보라.”

국군의 무기 도입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외국 방산업체 관계자가 던진 한마디는 우리 군의 대미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잘 보여준다. 한반도 하늘과 바다를 누비는 우리 군 무기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무역관계에서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미국제 비중이 높다.

미국 방산업체가 생산한 무기들은 도입 가격은 물론 운영 유지 비용도 비싸다. 처음 도입된 무기는 최소 20년에서 최대 40년 가까이 사용된다. 무기 운용과정에서 소모되는 부품을 공급하고 수리와 정비 등을 제공하면서 무기 판매가의 몇 배에 달하는 이익을 거둔다. 심지어 고장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찾는 과정조차 비용을 청구해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막대한 국부(國富)가 미국 방산업체 주머니에 들어가는 셈이다.

한국 공군 F-15K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자 지상에서 이동하고 있다.
공군 제공
◆ 하늘도 바다도 미국 무기 투성이

군 당국이 미국에서 사들인 무기는 공군과 해군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공군은 핵심 전력 대부분이 미국제로 구성되어 있다. 보잉은 공군이 2005~2012년 60대를 도입한 F-15K 전투기와 2011~2012년 4대가 실전 배치된 E-737 항공통제기 생산업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170여대가 도입되어 현재 30여대가 남아 있는 F-4 전투기는 보잉에 합병된 맥도널 더글러스 제품이다. 록히드마틴은 1988~2004년 F-16 170여대를, 1988~2014년 C-130 수송기를 판매했다.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40대가 도입되는 F-35A 스텔스 전투기 생산업체도 록히드마틴이다. 노스럽 그루먼도 1965~1986년 F-5 전투기 320여대를 판매했으며 올해부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4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레이시온은 AIM-9 단거리 공대공미사일과 AIM-120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등을 납품했다.

한국 해군 구축함 충무공이순신함에서 SM-2 함대공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해군 제공
해군 역시 상당수 무기가 미국제로 채워졌다. 충무공이순신급(5500t)과 세종대왕급(1만t)구축함에 탑재된 SM-2, RIM-116 대공미사일은 레이시온 제품이다. 세종대왕급 구축함에 탑재된 이지스 전투체계는 록히드마틴이 개발했다. 해군 함정에서 쓰이는 하푼 대함미사일은 보잉 제품이다. 군함이 항해할 때 동력을 제공하는 엔진은 제너럴일렉트릭(GE) 제품이 다수 쓰인다.

유럽이나 이스라엘을 비롯한 제3국 무기는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거나 수출 제한, 과도한 도입가격 등으로 인한 대체제 성격으로 도입된 경우가 적지 않다. 북한 잠수함을 격침시키는 역할을 맡는 유럽제 슈퍼 링스와 와일드캣 해상작전헬기는 비싼 가격으로 도입이 쉽지 않았던 미국 시코르스키 SH-60 시호크를 대신하는 성격이 강했다. 1980년대 CN-235 소형 수송기 도입은 당시 미국에서 그와 비슷한 종류의 항공기를 찾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다. 독일제 209급과 214급 제래식 잠수함도 미국이 재래식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아 프랑스와의 경쟁 끝에 도입이 결정됐다.

한국 해군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이 제주 민군복합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해군 제공
◆美 히든카드, 한미 상호운용성

공군과 해군의 미국제 무기 편중 현상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한미 연합작전 과정에서 무기체계의 원활한 가동과 정보 공유 등에 필요한 상호운용성 확보 차원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 유사시 공동으로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 연합 작전체계에서 상호운용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드라이버 모양은 십자인데 나사 홈이 일(一)자라면 나사를 조일 수 없는 것처럼 한미 양측의 전투장비는 십자 모양 드라이버와 나사처럼 ‘찰떡궁합’을 발휘해야 한다.

상호운용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양국의 무기가 동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드라이버와 나사 제조업체가 달라도 드라이버 모양과 나사 홈이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군사규격이 통일되어 있으면 큰 문제는 없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군사규격에 부합하는 무기라면 미군과의 상호운용성 확보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미국 무기를 도입해야 한미 연합작전에 지장이 없다는 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와 방산업체에 끌려다니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공군 소속 E-737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F-15K 전투기 편대가 초계비행을 실시하고 있다.
공군 제공
실제로 미국은 우리 군의 무기도입 사업에서 상호운용성을 강조하며 자국 무기 구매를 압박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06년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도입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미국대사관 전문에 따르면 2006년 3월 23일 크리스토퍼 본드 미국 상원의원은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상호운용성 증진 차원에서 보잉 기종을 구매해달라”며 “가격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돈 문제보다 동맹이 더 중요하며, 이는 보잉 기종 구매로 입증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4월 22일자 전문에서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대사가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보잉 기종만이 상호운용성을 충족시킬 수 있다며 구매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같은 태도는 정부가 보잉 E-737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후인 9월 6일 180도 달라진다. 이날 버시바우 대사는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이 “보잉의 가격이 한국군 예산 범위를 벗어난다”고 지적하자 “한국이 구매 결정을 지연해 가격이 올라간 것이며, 보잉과 협상해 문제를 해결하라”며 우리측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발을 뺐다.

한국 해군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에서 하푼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해군 제공
◆ 국내 정책과 환경도 영향 미쳐

우리 군의 태생적 환경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1950년 6.25전쟁부터 1970년대까지 함정, 전투기, 전차 등을 군에 지원했다. 무기를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훈련도 시켜줬다. 20여년 동안 무기 공급과 훈련 지원이 이뤄지면서 군수, 교육, 행정을 비롯한 군 조직과 인력은 미국 무기 운용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게 됐다. 이는 1980년대 이후에도 미국 무기가 지속해서 도입될 기반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무기체계 미국 편중 현상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산 무기 개발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무기 국산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상당한 결과를 거뒀으나 각 군 별 격차가 심하다.

육군은 1970년대 율곡 사업과 중화학공업 진흥정책에 따른 기술 축적에 힘입어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 주요 장비 국산화에 성공했다. K-9 자주포처럼 미국 무기보다 성능이 우수한 장비도 있다. 해군도 세계 최고 수준인 조선업을 기반으로 군함을 국내 건조한다. 국내 전자, IT 산업 기술력이 축적되면서 전자전시스템인 소나타(SONATA)와 해성 대함미사일, 함정 전투체계 등 국산 장비들이 함정에 탑재되고 있다.

반면 공군의 국산화는 타군에 비해 뒤쳐진 상태다. FA-50 경공격기와 T-50·KT-1 훈련기, 수리온 헬기 등 일부 항공기만 개발됐다. 2000년대 초부터 개발 필요성이 제기됐던 한국형 전투기(KF-X)는 정부 정책 결정이 늦어지면서 202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35가 지상에서 급유를 받고 있다. 한국 공군은 올해부터 F-35를 순차적으로 인도받을 예정이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제공
공군 무기 국산화가 늦어진 것은 국내 항공우주산업 기반이 약한데다 정부 정책마저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한 데 있다. 군용기 개발은 수백만개의 기계 부품과 전자장비를 결합하는 것으로 풍부한 개발 경험과 인력 및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민간 여객기나 비즈니스 제트기를 개발하면서 항공우주산업 인력을 양성하고 산업 인프라를 구축한 뒤, 이를 토대로 군용기를 만들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짧은 기간 동안에 다수의 전투기, 폭격기를 개발해 일본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도 민간 항공 및 자동차 산업 기반이 큰 역할을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 비즈니스 제트기 개발조차 경제성 등을 이유로 이뤄지지 못했다. 국산 전투기 개발도 원래 계획보다 10년 이상 늦어졌다. 정부가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장기적 안목에서 항공우주산업 진흥정책을 추진했어야 했지만 정권마다 서로 다른 정책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여기에 막대한 개발비용을 우려한 정부와 군의 무기 국산화 정책이 육군과 해군에 집중됐던 것도 원인이다. 군 관계자는 “국산 무기 연구개발(R&D)을 지속하면서 경쟁 입찰 체제를 강화해 무기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가격을 낮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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