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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눈도 귀도 없나”…정부가 키운 김영철 방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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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24 10:00:00 수정 : 2018-02-24 00: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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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던 지난달부터 북한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예견되어 왔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방남은 물론 마식령스키장에 선수단을 보내면서 전세기를 띄운 것이나, 북한 예술단을 태우고 온 만경봉 92호에 연료를 공급하는 문제 등은 국제사회와 우리 정부의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0년 평양에서 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해 북한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 연합뉴스
수면 아래에서 달아오르던 북한 관련 논란은 22일 김영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당 통일전선부장)의 방남(訪南)이 발표되면서 폭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남 도발을 전담하는 정찰총국장을 지낸 김 부위원장은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 2015년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과 사이버 해킹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부위원장의 방남이 발표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방남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천안함 피격 희생자 유족들과 예비역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올림픽 성공을 위해 대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천안함 사건이 있었을 때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당시 조사 결과 발표에서 누가 (사건의) 주역이었다는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배포하며 진화에 나섰고, 국방부는 침묵했다. 어리석음과 비겁함이 뒤섞인 모습에서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허점투성이인 정부의 김영철 방남 설명

정부는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수락하면서 “천안함 피격 주도자가 누군지 특정할 수 없다” “(국방부 공식 문건에) 공식적으로 김영철이나 정찰총국을 언급한 것은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3년전 오늘 북한의 도발로 서해 백령도 바다를 지키던 천안함 46용사가 꽃다운 나이로 산화했다. 사진은 해군과 해난구조 업체 관계자들이 천안함 침몰 20일만인 2010년 4월 15일 백령도 남방 해역에 가라앉아 있는 천안함 함미를 대형 크레인으로 인양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과연 그럴까.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는 “2010년 3월26일에는 천안함 폭침 사건,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과 같은 군민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한 대남 도발이 자행되었고, 2015년 8월4일 DMZ 지뢰도발과 함께 8월20일 연천군 일대 포사격 도발을 감행하였다”면서 관련인물로 김정일, 김정은, 김영철을 명시했다.

국방부가 2010년 발간한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보고서나 2010~2016년 네 차례에 걸쳐 발간된 국방백서 등에서는 천안함 침몰 주도자나 조직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7월 31일 국방부 국방교육정책관실이 작성해 국방일보에 게재한 ‘제31주차 기본정훈-제10과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 도발’이란 장병 정신교육 자료에서는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목했다. 대남공작기구들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만든 후 김정은의 최측근인 김영철을 책임자로 임명했다”며 “많은 북한 요인들이 숙청됐지만 김영철만은 유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영철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천안함 피격의 배후로 북한 독재정권 유지의 최고 공로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이나 정찰총국 개입 여부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정찰총국은 북한이 2009년 대남 및 해외 공작을 총괄하기 위해 인민무력성 정찰국과 노동당 작전부, 35호실을 통합해 만든 조직이다. 김 부위원장은 정찰총국의 초대 수장이었다. 정찰총국은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2011년 농협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 공격 등을 주도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김 부위원장이 정찰총국장으로서 도발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다.
2014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군사당국자 접촉에서 김영철과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김 부위원장이 이미 방남을 했다는 정부 입장도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통일부 설명자료에 따르면, 2014년 10월 15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이 이뤄졌다.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이 북측 단장을,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우리측 대표를 맡았다. 통일부는 설명자료에서 “당시 천안함 피격 책임과 관련해 어떠한 논란도 제기된 바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판문점은 남북이 함께 지키는 공동경비구역(JSA)으로 1976년까지 양측이 자유롭게 오갔던 중립지역이다. 현재 우리측 지역은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김 부위원장은 중립지역 내 유엔군사령부 관할 구역을 방문한 것이지 방남을 한 것은 아니다. 반면 이번 방남은 올림픽 폐막식 참석자로 평창으로 가서 외빈급 대우를 받게 된다. 군사당국자 접촉 대표와 국가를 대신해 국제행사에 참석하는 대표는 격 차이가 엄청나다. 외빈은 대통령을 면담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논란은 더욱 커질수밖에 없다. 천안함 피격 논란 해명에만 급급하다 보니 논리적 구성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영철 방남’ 아둔했던 통일부, 비겁했던 국방부

일각에서는 대남 도발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반대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전쟁 도중 치열하게 싸우던 상대가 만나 대화를 나눈 사례가 많다. 예로부터 전쟁터에서는 대화를 위해 양측간에 사신이 오갔고, 사신을 우대하고 신변을 보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나라와의 협상에 나섰던 일본측 대표는 조선 침공의 선봉장으로서 수많은 조선인들을 죽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였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휴전협상에 참여한 중공군과 북한군, 유엔군과 한국군 대표들은 판문점 밖에서는 38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를 치르던 군인들이었다. 이러한 선례로 볼 때, 군인으로서 대남 도발을 총괄했다 해도 대남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 부위원장의 방남 자체를 막기는 어려운 일이다.
2013년 3월 김영철 당시 북한 정찰총국장이 북한 최고사령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정부 대응이다. 정찰총국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라는 것은 일반 국민들도 잘 아는 사실이다. 정찰총국이 어떤 일을 했는지도 잊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 부위원장이 천안함 피격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관련자를 특정해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통일부 주장은 “술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으나 음주운전은 안했다”는 말만큼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나마도 김 부위원장의 천안함 피격 개입을 시사하는 자료들이 나오면서 남남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구구절절한 해명 대신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을 맡고 있어 남북 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여러 측면에서 과거와는 달라진 만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필요한 건설적 제안을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며 명분을 부각하고 북한에 정치적 부담을 안겨 방남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더 나았다는 평가다. 이쯤 되면 노회한 김 부위원장을 상대로 협상에 나섰다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지경이다.

국방부의 대응은 논란을 피해 숨어버린 인상마저 준다. 김 부위원장이 남북 대화 경험이 풍부하다지만 그는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해 군사훈련을 받아온 군인이다. 정찰총국장으로서 대남 도발을 주도했다. 통일부나 국정원보다도 그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부처가 국방부다. 군인 대 군인의 자세로 “당신의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마무리와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고려, 방남에 동의한다”고 밝히는 것은 어땠을까. 김 부위원장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남북 대화의 명분도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살리는 대신 국방부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성우회를 비롯한 예비역들이 반대 의사를 밝혀도 마찬가지였다. “군인답지 못한 자세”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운데)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23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북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한 고위급 대표단의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대승적으로 결정했으니 군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하는 군이 남북 대화를 강조하는 통일부처럼 행동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불신과 불안만 심어줄 뿐이다. “(김 부위원장은) 천안함 기념관에 가보기를 바란다”는 간단하지만 분명한 미국 국무부의 입장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문재인정부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개선할 동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동력을 잘 관리해서 한반도 평화 구축과 북핵 문제 해결 등 난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이해를 얻는 것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서는 치밀한 논리와 설득, 계획, 용기가 필요하다. 김 부위원장 방남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궁색함은 어렵게 얻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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