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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어리바리 도망자의 ‘골든슬럼버’

입력 : 2018-02-24 14:00:00 수정 : 2018-02-23 17: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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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에 개봉한 영화 ‘골든슬럼버’(감독 노동석, 2017)는 같은 제목의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 일본영화는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그 소설의 작가는 역시 같은 제목의 비틀즈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썼다고 한다.

오늘은 제목만으로도 여러 얘기가 가능한, 이번 한국영화 ‘골든슬럼버’를 보며 떠오른 다른 영화들을 비롯해 이러저러 단상들을 좀 적어볼까 한다.

글자 그대로의 뜻을 보면, 골든 슬럼버(golden slumber)는 황금빛 낮잠이다. 꿀맛 같은 낮잠, 단잠, 인생의 행복한 순간 등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비틀즈의 노래 ‘골든슬럼버’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로하는데, 그들이 그리워하는 순간은 과거의 좋았던 때일 수도 있고, 가족, 친구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골든슬럼버’에서는 주인공 건우(강동원)가 과거 친구들과 활동한 밴드에서 부른 노래로도 들을 수 있고,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 건우가 개업을 준비 중인 가게의 이름으로도 볼 수 있다. 건우에게 골든 슬럼버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이면서 동시에 도망자인 자신을 믿어주는, 누명을 벗고 돌아가고픈 친구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꽤 낭만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건우는 영화 초반 대통령후보 암살범으로 몰려 영화 내내 경찰과 국정원에게 쫒기는 도망자 신세이다. 사방에 널린 CCTV를 피해 다녀야 하는 덕에 속도감 있는 추격전이 계속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건우는 도망자로서는 영 능력이 부족하다. 경찰이나 정보기관으로부터 추격을 받는 도망자가 등장했던 영화들 중 ‘본’ 시리즈나 ‘테이큰’ 시리즈의 주인공 본(맷 데이먼)과 브라이언(리암 니슨)은 전직 특수 요원들이다. 그들은 감탄을 자아내는 도망 신공을 보여준다. 몸싸움에서 두뇌싸움에서 모두 화려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건우의 도망 장면을 이런 장면들과는 거리가 멀다. 

미래를 배경으로 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2002)에서 존(톰 크루즈)은 조만간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의 예측에 따라 도망자가 된다. 존은 그동안 시스템 팀장으로서 범죄 예정자를 체포하다가 이제는 본인이 체포될 위기에 처해 일종의 유능한 도망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위 일반인이  도망자가 된 영화들도 있다. ‘도망자’(감독 앤드류 데이비스, 1993)에서 킴블(헤리슨 포드)는 아내 살해 누명을 쓰고 도망을 친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감독 토니 스콧, 1998)에서 딘(윌 스미스)는 어쩌다 국회의원 살해 장면이 찍힌 영상 증거를 갖게 되면서 쫒기게 된다. 영화 초반엔 자신이 무지막지한 추격을 당하는 이유도 모른 채 도망을 친다. 그러나 킴블과 딘은 각각 의사와 변호사로서 나름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을 짠다. 비록 몸이 따라주지 않아 화려한 액션 장면은 많지 않지만.

이번 ‘골든슬럼버’의 건우는 광화문에 택배 배달을 갔다가, 눈앞에서 대통령 후보를 태운 차량 폭발을 목격하게 되는데, 목격자 대신 살해 용의자가 된다. 이미 본인이 살해 예고를 했고, 사전 행동도 취했음이 녹음된 음성, 녹화된 CCTV 영상 등으로 증거까지 공개되면서, 억울함을 외쳐봤자 거짓 변명인 상황이 되고만 것이다.

전직 요원이나 경찰 출신도 아닌 학생 밴드 출신 택배 기사 건우가 얼떨결에 도망자가 되어버려 살아남아야하고, 누명까지 벗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영화 초반에 이모든 상황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려준 오랜만에 만난 (그러나 만나자마자 “살아남아!”라는 말만 남기고 사망한) 친구 무열(윤계상)과 무열의 옛 국정원 동료 민씨(김의성)가 건우를 돕지만, 도처의 CCTV를 피해 거대 배수로를 헤맨다. 

하수도 장면들 덕분에 영화 ‘괴물’(감독 봉준호, 2006)도 떠올랐는데, ‘괴물’에서 주인공 가족들 역시 도망자였다. 바이러스 보균이 의심되어 수배가 내려진 가족들을 전문적인 지식 하나 없이 맨손으로 딸이자 손주이며 조카인 현서를 찾아낸다. (할리우드영화에서 흔히 보는 전문가나 공 권력자는 조연급으로도 등장하지 않았다.

어쨌든 과연 ‘골든슬럼버’의 건우는 살아남을까? 그리고 누명도 벗을까? 이미 영화를 본 관객들이 많겠지만, 어쩌면 조금 답답한 결말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음모가 누구에 의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짐작만 하게할 뿐,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괴물’에서도 괴물로 인해 벌어진 혼란의 전후 상황을 뉴스 화면 등을 통해 드러낼 뿐, 책임자가 드러나고, 응징 받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내가 만약 누명을 쓰고 도망자가 된다면?’ ‘날 믿어주고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정도의 상상을 약간만 보탠다면, 나름 추억을 떠올리며 찡함을 느낄 수 있는 어리바리 도망자의 ‘골든슬럼버’ 임은 분명하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사진=영화 '골든슬럼버', 영화사 집/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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