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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당신은 ‘몇 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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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24 00:07:34 수정 : 2018-02-24 00: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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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 남자, 키 173(㎝), 몸무게 73(㎏), 외모는 ‘중하’, 학벌은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중 하나)’, 지방대 로스쿨 졸업 후 서초동 3년차 변호사, 전세 8000만(원) 원룸, BMW5시리즈 소유….”

한 번씩 들여다보는 모교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정도 조건이면 어떤가요’란 제목으로 올라온 글의 일부다. 이 커뮤니티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 자기 스펙을 나열하고는 몇 점인지 매겨달라거나 상위 몇 %에 드는지 평가해 달라는 게시글을 볼 수 있다. 글쓴이의 분포는 성별과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댓글을 보면 간간이 “자랑하는 거냐”거나 “불쌍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대개는 성실히 점수를 준다. 나름의 기준에 따라 백분율 점수를 부여한 댓글도 종종 보인다.

이런 글을 접할 때마다 뒷맛이 씁쓸해진다. 나열된 ‘조건’이 대부분 기자보다 우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성취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다만 그 성취를 꼭 남들과 비교해 순위를 따지거나 구체적인 점수로 계량화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점수’에 대한 맹신은 그 뿌리가 깊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릴 때부터 경험하는 성적순 줄 세우기나 남들과의 비교에 어느새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학창시절 성적표뿐 아니라 대학 학점과 직장에서 받아드는 인사고과까지 숫자나 알파벳 등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이렇다 보니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로 대표되는 학벌이나 직업, 자가용, 집처럼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 항목들까지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지독한 ‘점수 사회’다.
김주영 사회부 기자
최근 교육현장에서 나오고 있는 ‘대입 수시 축소·정시 확대’ 목소리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지난 2년간 만난 교육계 관계자들 중엔 “수능으로 줄을 세우는 게 가장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적잖았다.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수시 학생부 위주 전형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은 데 따른 반작용이겠지만, 점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녹아 있는 주장이다.

입시의 공정성은 물론 중요하지만, 점수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산적한 과제 중 하나다. 끝없이 점수로 평가받고, 남들과 비교당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점수가 낮으면 박탈감을 느낄 테고,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해도 순간의 기쁨만 남을 뿐 더 높은 점수에 목매게 될 테니까. 점수가 언제나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똑같은 조건이라도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점수를 매길 수 있다. 연인에게 ‘만점짜리’인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들에겐 박한 점수를 받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가(기자가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점수 사회를 충실히 살아온 기성세대부터 모든 걸 숫자로 재단하고, 남들과 비교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제도적 뒷받침도 마련돼야 한다.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지 않으면서도, 반칙이 통하지 않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계속해서 점수에 집착한다면 우리 모두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주영 사회부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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