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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귀족·시민 집단 틈새 낀 모차르트 삶 사회학적 고찰… “그는 사회가 빚어낸 천재”

입력 : 2018-02-24 03:00:00 수정 : 2018-02-23 23: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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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박미애 옮김/포노/1만6000원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박미애 옮김/포노/1만6000원

모차르트라는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음악적 재능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모차르트처럼 비극적인 인생을 살다간 사람도 드물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지고 빚어졌다. 독일 저명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이 책을 통해 모차르트의 삶에 사회학적 돋보기를 들이댄다.

모차르트는 제후들의 궁정 악사로 출발했다. 흔히 말하는 궁정이란 제후의 가정을 의미했다. 커다란 궁궐이 아니었다. 음악가들은 그처럼 큰 집안에서 과자 제조공이나 요리사 정원사 또는 시종들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집안 내 서열에서도 보통 이들과 같은 위치에 머물렀다. 조금 비하해서 표현하면 그들은 ‘궁정 아첨꾼들’이었다. 대다수의 음악가는 궁정에서 종사하는 다른 시민 계급들처럼 처우에 만족했지만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불만족했고 스스로 소외되었다. 소외 계층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모차르트도 궁정 귀족들의 멸시에 괴로워했고 분노했다. 사회 고위 계층에 대한 적대감은 강한 긍정과 병존한다. 다시 말하면 그는 바로 이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고 동급의 인간으로 대우받기를 원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18세기 중반의 유럽은 궁정 귀족 집단과 시민 집단 사이의 격차로 갈등의 사회였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음악성은 이러한 시대에 적응하거나 저항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모차르트의 일생과 창작 과정은 궁정 사회가 시민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모순과 갈등, 이중성으로 가득찼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자기 삶의 의미를 아들을 통해 구하려 했다”면서 “20년 동안 아버지는 마치 조각가가 작품을 빚어내듯이 아들에게 공을 들이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모차르트라는 신동은 태어날 당시부터 천재가 아니라, 당시 사회가 빚어낸 천재”라고 정의한다. 저자의 시각은 모차르트 음악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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