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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광기·시대 아픔 속에서도 민초들의 삶은 질기고 강하다

입력 : 2018-02-22 21:21:48 수정 : 2018-02-22 21: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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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송기숙 중단편 전집 출간 / 백의민족·도깨비잔치 등 총5권 / 조은숙 교수, 9년에 걸쳐 정리 / 당대 약자들의 삶 해학으로 풀며 한국사회의 문제 끊임없이 탐구 “문학의 사회적 기능은 도깨비가 도깨비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을 그것은 도깨비의 삶이라고 깨우쳐주고 서로가 도깨비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자는 것일 게다. 도깨비가 세상에 활개를 치고 도깨비들이 세상에 득세를 할 때 작가의 사회적 사명은 그만치 커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때 문학의 목적이 어디 그게 전부더냐는 소리는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그 부조리를 타파하는 일일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이러한 기능이 유효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유신독재와 군사정권 시절에는 그 역할이 더 절실하게 전면에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강직한 품성으로 한국 현대사의 첨예한 문제들을 소설에 녹여온 송기숙씨. 그는 “도깨비로 살면서도 도깨비인 줄 모르는 이들을 깨우치는 게 문학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강조했다.
창비 제공
소설가 송기숙(83)은 도깨비 같은 세상에서 도깨비춤을 추는 비인간을 깨우치는 일이야말로 문학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라고 1978년 두번째 소설집 ‘도깨비 잔치’ 작가의 말에 썼다. 그는 “우리가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실현하는 것”이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존재의 가장 적극적인 발현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1966년 ‘대리복무’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살기 시작한 이래 40여년 동안 써온 송기숙의 중단편소설들을 망라한 전집이 창비에서 출간됐다. 조은숙 전남대 교수가 9년에 걸쳐 작품들을 5권으로 정리해 내놓은 이 전집은 소설가 송기숙의 작품세계를 체계적으로 조망한다. 

1권 ‘백의민족’에 수록된 12편의 초기 단편은 주로 반공을 내세운 국가 권력의 광기와 폭력을 반영한다. 2권 ‘도깨비 잔치’에 묶인 중단편 10편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 일제 식민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한 한국 현대사의 왜곡과 당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발표한 중단편들을 묶은 3권 ‘어머니의 깃발’에는 격동기 한국 현대사가 담겼고, 4권 ‘개가 왜 짖는가’에는 해학과 풍자가 뒤섞인 농촌 관련 소설들이 눈길을 끈다. 마지막 5권 ‘들국화 송이송이’에는 분단의 상처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갈파한 소설과 농어촌의 질곡을 파고든 중단편들을 수록했다.

평론가 염무웅은 소개글에서 “송기숙이 소설창작에 몰두하던 시기, 즉 1970~90년대도 어느덧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젊은 독자들 중에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고, 설사 그의 소설책을 잡는다 하더라도 많은 독자는 거기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살아있는 문제의식을 발견하기보다 시대에 뒤처진 ‘감각적 낙후’만을 느낄 가능성도 있다”면서 “송기숙 문학의 진정으로 뛰어난 점은 그가 인간 심성의 원초적 바탕에 대해 단지 낙관과 신뢰를 가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당면한 사회적 조건들과 부딪치면서 구체화되어왔는가를 끊임없이 소설적으로 묻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적시했다.

1978년 ‘교육지표’ 사건과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해 옥살이를 하면서 전남대 교수직에서 해직과 복직을 거듭했던 송기숙에 대해 가까이서 그를 인터뷰하고 작품들을 편집한 조은숙 교수는 “몇 가지 사건 때문에 송기숙의 문학을 민중문학으로만 재단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송기숙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당대 약자들의 삶을 다루면서도 김유정이나 채만식처럼 해학과 풍자를 담아 시대의 문제를 두루 잘 녹여낸 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기숙의 강직한 인간적 품성과 미덕을 두고 동료 문인들은 ‘순 조선 얼굴’ 혹은 ‘산적 같은 인상파’라는 애틋한 별명들을 붙였거니와, 평론가 임규찬은 “송기숙만의 소설적 특징으로 우리의 눈에 쉽사리 잡히는 것은 한결같이 황소고집이고 세상과 쉽게 타협할 줄 모르는 주인공들”이라면서 “작가 자신의 인간적 면모에 자연스럽게 합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 ‘인간천연기념물’ 송기숙은 지금 5·18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당한 고문 후유증을 안고 휠체어에서 투병 중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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